이인상의 병국도 / 시든 국화에 내 마음을 담다.

이인상, <병국도(病菊圖)>, 종이에 먹, 28.5×14.5, 국립중앙박물관, 서울

동아시아의 회화가 서양 회화와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작가가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점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서양 회화는 작가가 본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려고 하는 데 집중했다. 반면 동아시아의 회화는 본래 학자인 사대부가 미술제작의 주체가 되면서 그림을 단순히 아름답게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추구하는 이념이나 마음을 투영시키는 방향으로도 발전했다. 이를 ‘그릴 사’자에, ‘뜻 의’자를 써서 ‘사의’라고 한다.

물론 화가를 업으로 삼는 전문화가들은 서양의 화가들처럼 극도의 사실성을 추구하기도 했으므로 정리하자면 동아시아에서는 회화가 나아가는 방향이 사실과 사의, 이렇게 크게 두 가지였다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등의 후기인상주의가 유행하면서 화가가 작품을 그릴 때 자신의 감정, 주관을 담기 시작했다. 그만큼 동아시아와 유럽은 시공간이 다른 만큼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과 전개의 방향 또한 서로 달랐다.

사대부가 국가 운영의 주체였던 조선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사대부 출신인 문인화가가 그린 회화, 전문화가들인 화원들의 회화, 이렇게 양갈래로 나뉘어 발전했다. 본래 학자인 문인화가들이 회화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서 기반을 마련했다면 화원들은 이를 실천하고 저변화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덤으로 문인화가들은 관료로서 중국 사행을 다녀오기도 했기 때문에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는 최첨단의 미술 트렌드를 가장 먼저 수용해 올 때도 있었다. 현지에서 작품을 사오거나 선물 받을 일이 잦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은 조선시대 문인화를 대표하는 문인화가다. 그의 회화를 보면 단순히 어떤 대상을 아름답게 그리려고 했다기 보다는 뭔가 의미가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름답게 그리려고 했다면 먹과 색을 곱게 사용하고 디테일에도 신경을 써서 화면이 가득찬 느낌을 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인상의 회화는 이와 정반대의 화면을 갖고 있다.

<병국도>는 단어 그대로 ‘시든 국화’라는 의미다. 화면 한 가운데에는 가느다란 대나무와 시들시들한 국화가 배치되어 있다. 특히 국화는 너무 시들하여 손만 대어도 곧장 부러질 것처럼 앙상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뒤에는 오랜 세월을 견디면서 깎이고 깎인 바위가 있는데 이 역시 풍화작용이 심한 탓인지 만지면 바스러질 것처럼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인상은 바위를 그릴 때는 물기가 전혀 없어 까끌까끌함이 전해지는 붓으로 먹만 살짝 찍어 그렸고, 국화와 대나무는 매끈한 필선으로 그려 서로 대조적인 느낌이 들도록 그렸다. 아마 자신이 의도한대로 사람들이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국화와 대나무를 부각시키기 위해 필치의 차이를 둔 듯하다.

화면의 배경에는 어떠한 세부 요소를 그리지 않아 전반적으로 쓸쓸한 정경이 느껴진다. 그 속에 위치한 국화의 모습은 수명을 겨우 연명하고 있는 것처럼 강조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가 이인상의 마음이 어땠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이인상은 사대부 집안의 서얼(庶孼) 출신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양인 신분인 첩과 낳은 자식을 서자와 서녀, 천민 신분인 첩과 낳은 자식을 얼자와 얼녀라고 불렀다. 이를 합쳐 서얼이라고 했으며 이들의 출신은 대물림되는 사회였다. 그리고 차별받는 존재였다. 이인상은 뛰어난 학식과 높은 수준의 시서화 예술을 갖춘 사대부였지만 서얼 출신에 대한 사회의 유리천장은 견고하여 관료로서 뜻을 펼칠 수 없었다. 늘 하급직에만 머물렀고 말년에는 은거하며 본인이 좋아하는 시서화에 집중하며 지내다가 1752년에 세상을 떠났다.

<병국도>에 대한 해석은 여러 관점으로 가능하지만 아마도 이인상이 처한 환경과 그에 따른 그의 마음에 비추어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뜻을 펼칠 수 없는 존재, 나 자신은 서얼이 아니지만 증조부가 서얼 출신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자신도 차별받는 존재가 되어버린 상황 등이 그의 그림에 녹아들었다. 시들시들하지만 꺾이지 않고 겨우 버티고 서있는 국화는 자신을 상징하고, 뒤에 놓인 바위는 오랜 세월이 흘러 조금씩 부서지고는 있지만 도저히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시대상을 보여준다.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