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 본 아시아, 美』 / 아시아 미 탐험대

『밖에서 본 아시아, 美』는 미술사, 서양사, 사회인류학, 일본 영상문화론, 영미드라마, 산업디자인 전공의 학자들이 모여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시선을 주제로 각자의 연구논문을 모은 책이다. 세부 주제는 근대의 여행기 및 잡지에 투영된 아시아, 서양인에게 일본의 미가 선입견으로 자리잡게 되는 과정, 미국인 학자의 동아시아 문인화 인식, 게이샤를 주제로 한 영화로 본 서양의 일본 인식, 미국 미디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아시아에 대한 인식, 현대 디자인에 영향을 끼친 동아시아 예술로 구분된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아시아에 대한 외부의 시선을 논증한 책이어서 평소 서양인들의 인종차별, PC주의, 한류열풍 등에 관심이 많았다면 보다 깊이 있게 현재의 문화 양상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동안 논문을 쓰면서 문화의 영향관계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다루고, 자주 상상해보는 것은 상대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가였다.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우선 이해해야 그 영향의 여부를 최대한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인식은 현상 파악에 앞서 먼저 파악해야 하는 주요 전제이다.
이 책의 서문에도 써있듯이 아시아의 불교조각, 도자기는 본래 예술품으로 대접받지 않았다. 이 장르들에 예술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처음 바라본 것은 서양이었다. 유물의 역사성, 예술성을 체계적인 방법론으로 파악하는 미술사학이 유럽에서 시작되었기에 당연한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이제는 미술사의 한 영역으로 연구되고 있는 이러한 작품들을 더욱 깊고 다각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3자의 관점 및 인식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못보고 놓치는 것들을 그들에겐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숲이 어떻게 생겼고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전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지를 알기 위해서는 옆 산에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이 숲에 깊숙이 들어가 토질을 분석하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세세하게 조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숲에서 나와 옆 산을 등산하는 수고도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아시아를 바라본 외부의 시선이라는 공통된 주제는 있지만 논문집에 가까워서 주제를 풀어내는 서술 방식은 저자마다 차이가 있다. 한국과 일본의 미를 비교하거나 일본의 미에 대한 서양인들의 인식이 변화된 과정 등 글마다 목표 지점도 다르다. 다행히 책의 프롤로그가 책의 서문 역할을 넘어 마치 학술대회 마지막에 좌장이 총평을 하듯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 주제의식이 선명해지는 데 도움을 준다.
p. 15
비록 외부자가 숲을 잘못 보고 잘못 서술했다고 해도 그들의 오해와 오독은 숲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들이 왜 이렇게 숲을 ‘다르게 이해했을까'를 연구해보는 것은 숲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p. 17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왜 그들이 아시아에 대해 그와 같은 결론을 내렸는가' 하는 것이다.
p. 17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글은 유럽인과 미국인이 이해했던 아시아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아시아를 방문한 유럽과 미국 여행자들의 기록, 중국과 일본의 미술에 대한 서양인의 인식, 미국 영화에 나타난 아시아인의 이미지, 현대 디자인에 나타난 동아시아의 미적 가치의 힘에 대해 다룬다.
p. 90
서양인은 일본을 선불교라는 높은 정신성을 지닌 종교의 나라로 생각했으며, 다도, 수묵화, 정원, 꽃꽂이를 일본의 고유한 정신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여겼다. …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선불교, 다도, 수묵화, 정원, 꽃꽂이는 모두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이 중 어느 것도 일본 고유의 것은 없다.
p. 117
일본미술사 분야 중 1970년대까지 미국과 일본에서 집중적으로 연구된 것은 무로마치시대의 수묵화였다. … 셋슈의 <파묵산수도>(1495)는 간결하고 명료하면서도 마치 순간의 깨달음을 전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무로마치시대의 수묵화 연구가 급진전되면서 셋슈의 <파묵산수도>는 일본 회화의 정신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무로마치시대 수묵화의 아이콘이 됐다.
p. 118
셔먼 리는 당시 일본 미술의 정신성 및 와비, 사비, 시부미와 같은 미학적 가치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반발해 장식성이 강한 일본 미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p. 173
지나 마르케티는 백인 남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디언 포카혼타스가 그러한 캐릭터의 전형이고, 지배적인 백인 문화를 위해 자기 소속 집단을 배신 또는 자신을 희생하는 이야기를 ‘포카혼타스 패러다임'이라고 명명했다. 따라서 <나비부인>도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p. 178
미군이 일본을 통치하게 되자 할리우드는 게이샤로 대표되는 헌신과 순종의 여성상과 포카혼타스 패러다임을 다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무라카미 유미코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당시 미국 남성과 결혼한 일본 여성이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는 <나비부인>이 일본이 개국해 서양 세계와 교류하기 시작하던 때를 배경으로 했듯이, 패전 직후의 일본은 마치 새로운 개국을 하는 상황에 놓였다는 것이다.
p. 201
1920년대 흑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창조하고 스토리텔링하려는 ‘할렘 르네상스'라는 문예부흥운동을 벌였듯이, 미국 시민권을 합법적으로 인정받은 아시아계 미국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아시아 사람의 얼굴과 신체를 무대와 영상 매체 속에 내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