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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는 어떻게 1억에 팔리게 되었나?

이장훈
이장훈
- 5분 걸림 -
via @sarahecascone

2019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에서 덕트 테이프로 벽에 붙인 바나나가 작품으로 소개되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코미디언>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작품은 120,000달러에 판매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관심을 끌어 모았다. 별 거 아닌 바나나를 그저 박스 테이프에 붙여 놓았을 뿐인데 이게 1억원이 넘는다고? 미술은 알 수 없어, 역시 미술은 사기야 등 여러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이후에 벌어졌다. 전시장을 방문한 미국의 어느 행위예술가가 당당하게 바나나를 떼어내 먹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작품을 전시한 갤러리측은 이를 전혀 문제삼지 않았고 다른 바나나로 다시 전시를 했다. 일종의 에디션이 되어 버린 셈인데, 마지막 에디션은 최초 가격보다 비싼 150,000달러에 판매되었다.

이 에피소드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전제로 자리잡은 개념미술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개념미술은 작가의 의도와 생각이 중요할 뿐 이를 표현한 수단(재질, 조형적 아름다움 등)은 상관없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 작품의 작가는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이다. 그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현대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카텔란은 정치적인 메시지로 세상을 도발할 때도 있고,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관람객이 생각에 잠기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해프닝을 일으키고, 메시지를 전한다는 점에서 최초로 미술계의 고정관념을 파괴하려 했던 20세기 초반 다다이즘의 계승자, 개념미술가, 해프닝 작가로도 분류된다. 그러나 그의 모든 작품 활동의 기반에는 조각과 설치가 자리하고 있다.

에마뉘엘 페로탕과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 갤러리스트라는 직업을 재정의하고 현대미술계에서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평가받는 페로탕의 대처가 작품의 가치를 더욱 높였다. 괜히 페로탕이 아니다.

카텔란이 2019년에 선보인 바나나를 둘러싼 해프닝은 ‘어떻게 고작 바나나를 붙였을 뿐인데 1억이나 하는가’라는 의문에서 핵심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해프닝의 진짜 핵심은 미국의 행위미술가가 허락도 없이 바나나를 먹어치운 이후에 일어난 갤러리와 카텔란의 대처에 있다. 만약 갤러리와 카텔란이 바나나가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이에 대해 항의하거나 배상하라고 문제를 삼았다면 그 즉시 작품으로서 생명력을 잃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개념미술이기 때문이다.

개념미술은 정의 그대로 작품의 조형성보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바나나라는 오브제 자체에 집착하여 이게 없어졌다고 문제를 삼았다면 이는 개념미술이 아니게 되고 만다. 그저 그런 장난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갤러리 대표인 에마뉘엘 페로탕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다른 바나나를 찾아보죠. 이 사람이 먹은 건 그냥 바나나지, 특별한 바나나는 아니다”라며 다른 바나나로 대신 했다. 카텔란의 작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갤러리의 디렉터 루치엔 테라스 역시 “작품을 파괴한 게 아니다. 바나나는 그저 발상일 뿐”이라며 부연 설명을 해줬다. 이로써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은 향후 미술사에도 기록될 정도의 가치를 갖게 되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가 1월 31일(화)부터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개최된다. 2011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회고전 이후 최대 전시라고 해서 기대중이다. 운석에 맞고 쓰러진 교황의 모습을 조각한 <제 9시>부터 참회하는 자세의 히틀러인 <그> 등 대표 작품도 볼 수 있는 전시다. 카텔란은 자신의 작품은 미술관이라는 특정 공간에서만 의미가 있다고 한 바 있다.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며 관람하기에 좋은 기회다. '이 작품이 거리 아무 곳에 있다면 어땠을까?'라는 의문으로 감상할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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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History

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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