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About
  • Art News
  • Exhibition
  • Art History
  • Book
  • 로그인

법은 늦게라도 현실을 반영한다. 그런데 미술은?

이장훈
이장훈
- 4분 걸림 -
콘스탄틴 브랑쿠시, <공간 속의 새>, 1923

1927년 에드워드 스타이컨이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공간 속의 새>를 전시를 위해 미국으로 들여오려고 하자 미국 세관에서는 미술품이 아니라며 세금을 부과했다. 당시에도 미술품은 면세로 취급했는데 브랑쿠시의 작품을 미술이 아닌 대량생산 가능한 제품으로 본 것이다. 다른 컬렉터들이 세관에 항의했지만 번복되지 않았고 결국 이 일은 언론에서도 헤드라인 기사로 다룰 정도로 큰 이슈가 되었다.

결국 브랑쿠시를 후원하는 사람들이 소송을 제기하여 법원에 의해 이 결정은 번복되었다. 판결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위 새로운 미술사조가 전개되고 있다. 그 사조의 작가들은 자연의 사물을 모방하기보다 추상적 개념의 표현을 시도하고 있다. … 그 물건은 조화롭고 균형잡힌 선으로 구성됐고, 그 물건에서 새를 연상하기는 어렵겠지만 관람하는 즐거움이 있으며 상당히 장식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전문 조각가의 독창적인 산물이라는 증거를 확보했으므로… 이의를 인정하고 면세 통관의 자격이 있음을 평결한다.”

할 포스터 외, 배수희 외 역, 『1900년 이후의 미술사』(세미콜론, 2016), p. 254 재인용

판결문을 보면 브랑쿠시의 작품은 일반 디자인 제품과 달리 실용성이나 인테리어를 위한 단순 장식품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에 의한 추상성 덕분에 미술작품으로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법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하나의 기준이 되어준다. 사회가 거대화와 미시화가 함께 발전하는만큼 법도 상당히 촘촘하게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하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사람들의 관념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때도 종종 생긴다. 대표적인 것이 2008년에 폐지될 때까지 사용되었던 ‘호주제’이다. 호주제는 가족을 대표하는 사람을 남자로 한정지어 재산의 처분이나 가족의 일에 대해 우선적 권리를 갖게 하던 것으로, 여성인권의 성장에 따라 2008년에 이르러 폐지되었다.

브랑쿠시의 미국 면세 논란과 호주제 폐지에서 볼 수 있듯이 법은 때로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해 뒤늦게 개정되거나 폐지될 때가 있다. 지금도 시대와 관념에 맞지 않은 낡은 법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하나씩 하나씩 개정하려는 노력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게 법은 늦게라도 동시대, 사회의 관념에 보조를 맞춰가곤 한다.

문제는 100여 년 전인 1927년에 이렇게 발상의 전환과 유연성을 보여주었던 법에 비해 미술은 여전히 요지부동하다는 데 있다. 미술과 공예를 분류하는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며, 미술과 디자인의 차이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은 마련되지 않았다. 양자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며 발전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미술은 명료함을 생명으로 해야 하는 법과 태생부터 다르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논란이 지속되어 왔음에도 여전히 학계의 합의는 커녕 담론의 시도조차 뜸해지는 현실은 반성해야 될 것이다. 100년 전부터 있었던 논란이 지금도 논란인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Art History

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1 이달에 읽은
무료 콘텐츠의 수

이 달의 무료 콘텐츠를 모두 읽으셨어요 😭

구독하시면 갯수 제한 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