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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첼리는 왜 머릿결을 꼬불꼬불하게 그렸을까?

이장훈
이장훈
- 9분 걸림 -

최근 <아트앤팁 북클럽>에서 『예술의 역사』로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 고대부터 근대까지의 예술사에 대해 매일 해당 분량을 읽고 마음에 와닿았던 문장과 짤막한 단상을 단체 카카오톡방에 남기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함께 하는 분들이 미술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어서 그런지 같은 문장을 읽어도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알 수 있어 꽤 재밌게 운영하고 있다.

재밌게 봤던 미술사 관련 다큐멘터리 영상을 나누고, 전시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독서의 이해를 서로 돕기도 한다. 예술을 소재로 삼은 수다방 같을 때도 있어 세상과 유리된 채 마음을 평안케 해주는 모임이다. 질문이 올라오면 함께 의견을 나누거나 내가 답해줄 때도 있는데 그중에서 재밌었던 질문을 하나 소개한다.

“바이올린 연주자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그 무렵 어느 화가보다도 그림에 비브라토를 많이 썼다. 그런데 비브라토는 너무 길지만 않다면 이따금 필요하고 또 매우 유쾌한 것이다. 음악에 정서적 느낌을 지나치게 주기 때문에 비브라토를 많이 들으면 강건한 느낌을 원하게 된다. 그 점에서 비브라토는 보티첼리의 신경질적이고 불안정한 기질에 꼭 맞았다.”(p. 304-305)

바이올린 악기를 오래 연주해본 저로써는 비브라토가 음악안에서 기능하는 부분과 어떤 감정들을 전달하는가를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를 그림에 표현한 저자의 의도를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고 어떻게 그려진 기법을 비브라토에 빗대어 표현했는지 무척 궁금하고 더 자세한 설명이 결여되어져있는것이 안타까웠네요. 음악에선 흔히 솔리드음보다 비브라토음으로 구현될때 보다 부드럽고 감정적으로 표현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보티첼리 그림의 뭔가 몽환적인 흐릿함?을 두고 이리 표현한 것일까요??

비브라토는 음악 용어로 “음을 떨리게 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악기일 때도 있고, 성악일 때도 있다. 저자는 비브라토 개념을 빗대어 보티첼리의 그림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그림 전반의 활기로 추정하는 이야기도 나왔다. 일리가 있는 의견이다. 그만큼 보티첼리 그림은 앞선 중세의 회화에 비해 확실히 화사하고, 인물들의 동세도 강화되어 르네상스가 막 시작될 무렵 피렌체의 활기찬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무엇보다 중세에는 금기시되었던 이교 신화인 그리스와 로마 신화를 그렸기 때문에 보다 자유롭고 재밌는 스토리가 담기도록 했다.

더 나아가 저자가 보티첼리의 그림을 비브라토에 빗댄 직접적인 원인을 찾아보자면 바로 인물들의 꼬불꼬불한 머릿결을 들 수 있다. 보티첼리는 본인의 그림에 생동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 스스로 아쉬움이 컸다. 그는 초기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피렌체의 화가답게 원근법의 적용, 그리스 신화의 차용 등 혁신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 화가다. 그러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발전과 혁신을 꾀했던 것 같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0년경, 캔버스에 템페라, 279×175cm, 우피치미술관, 피렌체

보티첼리는 워낙 유명한 화가고, 그의 작품 또한 초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것으로 대접을 받고 있다. 이러한 그의 명성은 오히려 그의 작품을 냉정하게 감상하고 평가하는 데 방해가 된다. <비너스의 탄생>은 좌우 대칭에 의한 안정된 구도, 원경의 수평선의 존재로 확인할 수 있는 선원근법의 구사, 이교 신화의 소재, 누드화 등 여러모로 혁신적인 그림이다.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티첼리는 인물들이 진짜 사람같길 원했다. 그림에 손을 대면 실제 사람의 피부를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나길 바랬다.

산드로 보티첼리, <봄(La Primavera)>, 1478년경, 패널에 템페라, 203×314, 우피치미술관, 피렌체

이를 염두에 두고 다시 그림을 보면 인물들이 마치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 같기도 하고, 혹은 멈춰있는 조각품 같아 보이기도 한다. 생동감이 생각만큼 크지 않고 결여되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보티첼리는 스스로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택한 것이 바로 저 꼬불꼬불한 머릿결이다. 머릿결에 최대한 부드러운 곡선을 넣음으로써 뻣뻣해 보이는 조각상 같은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 같은 특징은 다른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너스와 마르스>는 부부 사이인 사랑의 여신과 전쟁의 신을 대조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옷차림이나 장소를 보면 침실에서 사랑을 나눈 직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남자는 넉다운이 된 채로 곯아 떨어졌고, 여자는 뭔가 못마땅한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다. 오죽 심하게 곯아 떨어졌으면 정령인 사티로스가 귀에 대고 뿔피리를 불어도 일어날 기미조차 없다. 무시무시한 전쟁도 결국 사랑의 힘에는 못미친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걸맞게 지극히 인간적인 주제라 할 만하다.

산드로 보티첼리, <비너스와 마르스>, 1483년경, 캔버스에 유채, 69.2×173.4, 내셔널갤러리, 런던

이 사진은 런던 내셔널갤러리에 갔을 때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 비너스의 하얀 드레스가 단순한 드레스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옷 속에 위치한 피부가 언뜻언뜻 보였다. 그냥 드레스가 아니라 시스루를 표현한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은은하게, 혹은 은밀하게 표현했다. 작품을 보며 보티첼리의 채색 감각에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 정도로 실력이 아주 뛰어난 보티첼리인데 스스로 영 만족스럽지 못했나 보다. 이 작품에서도 비너스와 마르스 모두 머릿결을 꼬불꼬불하게 그렸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1503-1506년경, 패널에 유채, 53.3×76.8, 루브르박물관, 파리

보티첼리는 물론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이고 당시에도 혁신적인 인물이긴 하다. 그러나 인물의 생동감 측면에서는 후에 등장하는 후배 화가들만 못한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레오나르도가 그린 <모나리자>를 보면 피부는 만지면 폭신한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만큼 채색 감각과 입체 표현을 위한 명암법이 한층 발달한 것이다. 무엇보다 인물과 배경 사이의 경계가 흐릿하게 되어 있어 인물이 따로 놀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공간에 배치되어 있다. 쉽게 말해 보티첼리의 인물은 윤곽선이 너무 명료하여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다는 의미고, 레오나르도의 인물은 실제 사람에 가깝게 그려졌다는 의미다.

보티첼리가 있었기에 레오나르도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나올 수 있었다. 보티첼리는 당시의 지식과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혁신에 성공했다. 그러나 작품성 자체만 놓고 보면 스스로도 느꼈듯 분명 한계도 존재했으며 곱슬 머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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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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