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한 이후 줄곧 사용해왔던 ‘문화재’라는 명칭이 ‘유산’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문화재청이 작년에는 국보와 보물에 붙은 번호(문화재 지정번호)를 없애고, 올해는 오랫동안 지적받았던 문화재 명칭과 개념 변경을 드디어 마무리했네요. 두 일 모두 일제의 잔재를 우리의 역사성과 시의성을 고려한 청산의 성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문화재 지정번호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제정하며 부여하기 시작한 번호인데 광복 이후에도 이를 그대로 계승한겁니다. 이후 지정되는 순서대로 매기게 되었죠. 그런데 아무래도 번호가 있다보니 은연 중에 앞선 번호일수록 가치가 높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심지어 숭례문(남대문)과 흥인지문(동대문)이 각각 국보 1호, 보물 1호로 지정된건 일제의 침략야욕이 들어간 번호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왜군이 한양에 입성할 때 들어온 문들이거든요. 그들에겐 조선 정벌의 상징 기념물이었던 셈이죠.
‘문화재’라는 명칭의 경우는 일본의 문화재보호법 영향을 받은 것도 있지만 더 넓게 보자면 20세기 전반에 전세계에서 통용되던 관점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문화재를 바라보는 관점의 너비가 지금보다 좁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 미학적으로 가치있는 물건을 의미했습니다. 이렇게 물건의 범주에서 바라보니 자연스레 소유자와 고가라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고 이를 일본에서 번역한 결과, ‘재물 재(財)’ 글자를 넣어서 ‘문화재(文化財)’라는 단어가 된겁니다.
이후에도 계속 문화재라고 부르다보니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상황과 논란도 종종 생겼습니다. 문화재는 사적 재산이다는 점과 공공성을 바탕으로 보존하여 후세에 잘 전달해야만 하는 의무가 동시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국보의 소장자가 개인일 경우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의 사례처럼 개인의 사유재산인 점을 앞세우면 재판까지 가야 했던 것처럼 말이죠. 물론 국보와 보물같은 지정문화재는 소장자가 소유하되 국가가 상시 체크하고 관리하는 것을 의무화시키긴 했지만 개인 소장자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지금은 문화재를 바라보는 관점도 넓어져서 단순한 명품을 넘어 인류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에는 자연, 유적, 장소 그리고 무형의 자산까지 포함되죠. ‘재물 재(財)’를 쓰기가 애매해진 시대가 온겁니다. 소유물의 개념을 넘어 ‘유산(Heritage)’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파괴를 방지하고 보호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기준에 발맞춰 갈 필요도 있고요.
영화 <킹스맨>에서 나온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적확한 용어 사용과 말습관이 올바른 인식의 첫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재라는 말을 사용해서 논란의 변수가 계속 생기게 하기 보다는 앞 세대가 남겨놓은 사물 또는 문화라는 의미인 ‘유산(Heritage)’으로 변경되었다는 소식이 무척 반가웠습니다. 친구가 이름을 바꾸면 의식해서 바꾼 이름을 계속 불러줘야 복 받는다고 하는데 앞으로는 어색하지만 ‘문화유산’이라고 부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