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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체를 구사하는 젊은 전업 서예가를 보고 싶다.

이장훈
이장훈
- 9분 걸림 -

지난 2017년에 교토국립박물관에서 개최한 《국보》전을 보러 간 적이 있다. 2018년 개최할 일본미술 특별전 준비차 관장님, 실장님을 모시고 간 출장이었다.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아침 일찍 호텔 로비에서 관장님을 뵙고 개관 시간 전에 도착을 했는데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구름 인파였다. 관장님, 실장님과 함께 2시간 정도를 이렇게 줄을 선채 기다렸는데 기다리는 내내 감탄, 황당함이 연이어 교차되었다. ‘아니~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줄을 서나’싶다가도 ‘고미술에 관심이 이렇게 높다니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도 그렇고 일본에 전시를 보러 갈 때면 항상 부러운 점이 하나 있었다. 고미술 전시임에도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젊은 연인, 친구들 무리, 전공자로 보이는 사람들 등 각양각색의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아직 서양미술 특별전, 현대미술 전시만 젊은 사람들이 몰리는 분위기였다. 일본의 전시 관람 문화가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문화 선진국의 여러 기준 중에는 젊은 세대가 고미술을 즐기는지 여부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인스타그램으로 내 전공과 관련된 여러 태그를 팔로잉해놨다. 일본미술, 에도회화, 남화 등 여러 키워드가 있는데 그중에는 ‘서도(書道)’도 있다. 서도는 서예의 일본식 표현이다. 본래 동아시아에서 ‘서(書)’라고 불렀던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서예(書藝), 중국과 베트남은 서법(書法), 일본에서는 서도(書道)라고 한다. 참고로 ‘서예(書藝)’는 일본에 넘어갔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찾아온 인물이자 당대 최고의 서예가였던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 1903~1981)이 중국의 서법, 일본의 서도에 대응하여 만든 용어다.

인스타그램으로 팔로잉한 일본의 서도(書道) 관련 포스팅을 볼 때마다 놀라면서도 내심 부럽기도 하는 등 만감이 교차한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정식 서예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한자를 일상에서 많이 접하는 일본이라고는 하지만 전통 서예를 즐기고, 또 이를 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 부럽기도 했다. 당장 내가 ‘지금부터 서예를 배운다고 한다면?’하고 떠올려봤다.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하는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인프라가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일본인들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국의 전통을 고수하는 면이 있다. 지금도 투표할 때 투표용지에 직접 후보자의 이름을 쓰고 있을 정도다. 그리고 여전히 팩스로 업무를 처리하고 결재 문서에 직접 서명하는 나라이니 전통 문화 고수에 대한 명암이 모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술 문화계 종사자의 시각으로만 본다면 이는 참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2020년 1월, 코로나가 찾아왔다. 이를 계기로 취향의 개인화는 더욱 강화되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처럼 서양 중심의 대형 전시는 여전한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 못지 않게 도시재생과 뉴트로의 인기도 높아졌다. 도시재생과 뉴트로 모두 전통을 리메이크한 새로운 문화다. 무조건 새 것, 세련된 것만 고집하지 않고 옛 것을 다시 보기 좋게 잘 살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도시재생과 뉴트로에 대한 여러 논란이 있지만 일단은 전통에 대한 마음의 진입장벽을 허무는 데 기여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작년 9월부터 한 달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0대가 방문하고 싶은 박물관’이 되도록 브랜딩하는 것을 목표로 “대박쌈박! 국중박”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광고대행사 TBWA의 대학생 교육 프로그램과 협업한 행사다. 김홍도의 풍속화 속 인물들을 소재로 한 연극과 유물 관련 사연에서 추출한 괴담 연극을 진행했다. 할로윈 행사로는 ‘K귀신잔치’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전통 귀신과 함께 하는 파티를 개최하여 20대들의 많은 참여를 이끌어냈다. 마지막으로 박물관이 마음을 치유하고 복원하는 공간이 된다는 취지로 마음 상태별 박물관 동선을 추천해주는 ‘마음복원소’도 운영하였다. 지극히 대학생스러운 발상이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풋풋한 느낌의 기획이지만 그래도 젊은 세대와 전통문화의 만남이 꽤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이같은 유행의 흐름은 다행히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1월에 개최된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조선, 병풍의 나라 2》 전시에 젊은 세대의 방문이 상당하다고 한다. 실제로 인스타그램에 고미술 전시 인증 사진이 이렇게 많이 올라오는 것은 처음 봤다. 크고 시원한 전시실에 병풍들이 깔끔하게 DP된 것도 높은 인기에 한 몫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직은 한계도 함께 존재한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작품에 대한 애호보다는 공간에 대한 인기가 더 높다. 사진찍기 좋은 공간, 보기에 좋은 공간, 놀러갈 만한 공간으로 더 강조되고 있다. 병풍은 몇 폭짜리가 있는지, 연폭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2폭은 다른 말로 뭐라 부르는지, 병풍에 그려진 그림은 무슨 주제인지 등에 대한 관심보다 공간 연출이 더 조명받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실망할 필요는 없다. 진정으로 좋아하게 되는 마음은 원래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끌어올라가는 것이니까. 축구선수의 수려한 외모에 반했다가 나중에는 축구 자체를 즐기게 되는 것과 같다.

어쨌든 이렇게 불씨가 생긴 전통 문화, 고미술에 대한 관심이 꺼지지 않게 하려면 지금까지 학계에서 지속되어온 연구를 근간으로 한 보다 세련된 마케팅이 필요하다. 박물관에서 연극과 파티를 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 식상하다. 본연의 콘텐츠를 고려하지 않은 마케팅은 수명이 길지 않다. 일회성 이벤트 정도는 괜찮겠지만 그렇게 선보인다고 하여 없던 관심이 생기진 않는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갖고 있는 콘텐츠, 즉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끌어와야 한다.

아마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좋은 거니까 제발 좋아해줘. 좋아해야 되는 거야”라고 계속 강요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장기적인 계획과 인내심을 갖고 고미술 작품의 아름다움에 스며들게 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도 매년 성과로 내세우기 좋은 단발성 행사 대신 최소 5년 이상의 장기 계획을 세워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리 해야 재능있는 작가들이 안심하고 전업 작가로 활동할 수 있고 이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 또한 자연스레 생길 것이다. 지난한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게 가장 빠른 길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도 추사체, 일중체를 구사하는 젊은 전업 서예가들이 많아지고 서예 아트페어도 성행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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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History

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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