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소장된 중국회화의 정수
대만은 한국미술사(동양미술사) 전공자라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유럽에 그리스가 있듯,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을 빼놓고 미술사를 논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시기에나 문화를 주도하는 국가(지역)가 있게 마련인데 중국은 그 역할을 오랜 기간 차지해왔죠. 20세기 이후 미국의 문화가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중국이 아니라 대만을 가야하는 이유는 중국미술사의 최고 명품들이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에 많이 소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중일전쟁 이후 다시 패권을 놓고 싸우던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 내전(국공내전)에서 결국 공산당이 승리했고, 국민당은 대만에, 공산당은 중국에서 정권을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죠. 이때 장제스가 대만으로 패퇴할 때 북경 자금성을 비롯해 중국 곳곳에 있던 유물 중 최고 명품만 추려서 리스트를 만들고 최대한 배에 실어서 대만으로 가져가 설립한게 현재의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입니다. 다급하게 후퇴하며 가져가야 했기에 다 가져갈 수는 없으니 명품 위주로 가져갔습니다. 도자, 공예도 많긴 하지만 운반이 편한 서화(두루마기)를 특히 많이 가져갔습니다.
증명이 된 얘기인지는 모르겠으나 배로 후퇴하던 장제스를 마오쩌둥이 충분히 격침시킬 수 있었음에도 워낙 방대한 양의 명품급 문화재를 갖고 있어서 그냥 보내줬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저는 1960년대에 중국 문명을 모조리 파괴한 문화대혁명을 일으킨 마오쩌둥이 과연 그렇게 멋진 일을 했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장제스가 이렇게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2,972개의 박스에 명품(자금성 유물 29만점 포함 총 61만 여 점)을 실어 함께 후퇴한 이유는 문화재가 국가의 정체성을 대변해준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의 정통성은 공산당이 세운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국민당이 세운 중화민국에 있다는 주장이죠. 비록 상황이 여의치 않아 대만에 잠시 망명정부처럼 머물러 있지만요. 마치 왕정시대에 옥새를 갖고 피난가는 심정이었을겁니다.
장제스의 이런 결단 덕분에 대만 국립고궁박물원(중국에서는 ‘국립'을 떼고 부른대요.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작품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6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상설전에 나온 소장품이 단 한 번도 겹친 적이 없다고 하니 그 방대함과 퀄리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은 작년 11월에 개최한 ⟪진원국보(鎮院國寶)⟫ 특별전 소개 영상입니다. 메일 제목으로 쓴 “종이는 천년을 가고, 비단은 오백년 간다(지수천년, 견수오백)”는 말은 이 전시의 큐레이터가 천 년 가까이 세월이 흘렀음에도 종이보다 수명이 짧은 비단에 그린 작품이 잘 보존되었다고 소개한 것을 인용한겁니다.
이 특별전은 북송대 최고의 회화작품인 범관의 <계산행려도>, 곽희의 <조춘도>, 이당의 <만학송풍도>가 함께 전시된 블록버스터급 전시였습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전시에 나왔다고 하니 아마 원, 명, 청대의 유명한 작품들도 함께 나온 것 같습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보러 갔을텐데 정말 아쉽더군요.
북송대는 회화이론이 정립된 시기로서 이후 동아시아 회화의 전범이 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화는 고대부터 시작되었지만 북송대에 싹 한 번 정리되고 이후 원, 명, 청대는 이것에 대한 작용,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죠. 서양미술사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동일한 위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회화에도 아주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직접 가까이에서 보면 ‘사람 손으로 그린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주 정치합니다. 진한 먹색의 조화는 웅장한 산 속의 고요함과 경이로움을 느끼게 해주죠. 이를 잘 소개한 영상이 있어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