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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음과 닮지 않음의 사이

이장훈
이장훈
- 6분 걸림 -
제백석, <산수도 12폭 병풍> 부분

중국 근현대 화가 제백석(1864-1957)은 "닮음과 닮지 않음의 사이(似與不似之間)"에 있는 그림이 가장 귀하다고 했다. 제백석은 그림이 대상을 너무 닮지 않으면 “세상을 속이는 일”이 되고, 너무 닮으면 “세상에 아부하는 일”이라 말했다. 닮음과 닮지 않음 사이 어딘가에 위치해 있어야 좋은 작품으로 여긴 것이다. 대상과 꼭 닮은 그림은 그저 신기하고 감탄만을 불러올 뿐 그 이상의 감동으로 이끌어주지 않는다. 반대로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라면 실력이 없거나 낙서에 가깝다.

이 같은 생각은 제백석의 독창적인 이론이라 하긴 어렵고 고전 회화에서 늘 중요한 기준이 되어온 것이다. 사진인지 그림인지 구분이 어려운 하이퍼 리얼리즘이나 감정을 담은 추상회화가 하나의 미술 장르로 발전한 현대에는 꼭 들어맞는 이론이 아니게 되었지만 당시의 관점에서는 최상의 회화기준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풍경이나 인물을 그릴 때는 지금도 이 기준을 적용시킬 수 있다.

중국화론을 보면 닮은 듯 안닮은 듯한 경지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수많은 서화가들이 하나같이 강조하지만 정작 어떻게 그릴 수 있는 지에 대한 방법론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나마 공통점을 뽑아보면 개성을 표현할 것, 개성 표현을 위해 학문과 생각의 깊이를 발전시킬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눈으로 본 그대로를 그리는 게 아니라 심상(心像)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만큼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중요한 것은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는 말의 대상이 되었던 백제미술을 대표한다.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쓰고 색다른 관점을 보일 수 있는지를 위해 오랜 시간 매진함으로써 비로소 자신만의 화업을 이룰 수 있다. 감상자의 입장에서도 그 경지를 알아챌 수 있도록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는 말이 있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다"는 의미다. 이 역시 결코 합치시킬 수 없는 양 극단의 느낌 사이를 볼 줄 알아야 비로소 즐길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시대의 요구는 그렇지 않다. 날이 갈수록 점점 명쾌함만을 요구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것 아니면 저것. 두 개의 선택지만을 강요하며, 고르지 못할 때는 우유부단, 맹탕,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한 사람으로 여기고 만다. 철 지난 혈액형별 성격과 최근 MBTI로 사람을 분류화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 마지막 장면

예술은 이렇게 수학 공식을 풀 듯이 이해하고 좋아할 수 없다. 예를 들어 경쾌하고 빠른 선율의 음악에서도 쓸쓸함을 캐치할 수도 있고, 누가 봐도 눈물을 쏟아 마땅한 장면이지만 실소를 금치 못하는 영화도 있다. 그만큼 감정의 스펙트럼은 복잡하고 완성도가 수반되어야 감상자에게 의도한 대로 전달할 수 있다. 사람의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 마지막 장면처럼 우는 건지 웃는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감정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술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제백석의 말처럼 “닮은 듯 닮지 않은 듯”한 지점을 잘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이 되었건 명확해야 하고, 심플할수록 우수하며, 미니멀해야 아름답다는 시대의 굴레에서 벗어나 관조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필요하다. 넉넉한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좋을까. 책 『피로사회』에서 정보과잉시대일수록 ‘깊은 심심함’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여기에도 적용하면 좋을 듯하다.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수없이 스크롤하게 만드는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특별히 할 것 없음에도 앉아있게 만드는 컴퓨터를 끄고 심심함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일부러 만들어야 한다는 게 영 못마땅한 시대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말과 글로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예술의 오묘한 지점을 비로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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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History

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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