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분간 미술품 중에 고전 작품을 사야하는 이유

최근 해외 미술 시장에서는 서양 고전 열풍이 불고 있다. 1월 25일부터 2일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올드 마스터 경매 낙찰총액은 각각 6270만달러(약 772억원), 8660만달러(약 1066억원)를 기록하며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대표적으로 바로크 미술의 거장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들고 있는 살로메>는 소더비 경매에서 331억원에 팔리며 이날 경매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에는 그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가 걸려 있다. 반 다이크의 <성 히에로니무스를 위한 습작>은 습작인데도 같은 날 경매에서 310만달러(약 37억원)에 낙찰됐다.

<성 히에로니무스를 위한 습작>은 2002년 뉴욕주 킨더훅의 어느 농장 창고에서 발견되어 600달러(약 74만원)에 거래되었던 작품이다. 로테르담박물관에 있는 <성 히에로니무스와 천사> 속 인물과 화풍 및 자세가 유사하여 이를 위한 습작으로 추정된다. 2019년 미국의 미술사학자 수전 J. 반스가 안토니 반 다이크의 작품임을 밝히며 작품의 가격이 급증했다.
서양 고전 작품은 유명세에 비해 저평가를 받아왔다. 높은 가격을 기록한 것은 대부분 인상주의 이후 작품이다. 특히 코로나19 확산 이후 젊은 세대가 미술시장에 유입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해졌다. 특히 미술작품 구매를 갓 시작한 젊은 세대는 보다 트렌디한 젊은 작가의 작품을 선호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투자의 관점으로 작품을 보기 때문에 가격 급등을 노린 것도 한 몫했다. 우리나라도 같은 흐름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2023년 불황이 예견되면서 미술시장의 거품도 꺼지고 있다. 불황일수록 작품의 가치가 확보된 고전 작품의 인기가 높아진다. 앞서 언급한 크리스티와 소더비의 올드 마스터 경매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2007년 유례없는 미술시장의 활황을 겪은 뒤 거의 10년 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미술시장이 활황일 때는 김홍도, 정선과 같은 고전 작가들의 작품 가격이 한탄스러울 정도로 낮았다. 1억원이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경제와 미술시장이 불황에 들어서자 가격이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2021년에는 부동산 시장 투기 바람, 주식 시장 활황, G7의 이탈리아를 제칠 정도로 국가 경제의 규모가 성장했던 것과 맞물리며 미술시장이 유례없는 호황을 맞은 바 있다. 코로나19의 패닉 바잉도 한 몫했다. 한 마디로 운이 좋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차근차근 성장세를 가질 만한 요소가 미술시장 내부에 없었기 때문이다. 투기 바람에 편승했을 뿐이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이같은 바람은 불과 1년 만에 소멸되었다. 2007년과 마찬가지로 거품이 꺼졌다고 볼 수 있다. 향후 10년 간은 미술시장의 거품이 꺼진 상태가 지속될 것이다.
우리나라 미술가 중에 한 명이 갑자기 BTS가 되지 않는 이상 어렵다. 국내 미술시장 파이가 작고, 작다 보니 차분하게 작가를 발굴하여 좋은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 어렵다는 점이 한국 미술시장의 가장 큰 어려움이다. 갤러리, 옥션 등은 처음부터 해외에 어필할 수 있는 것을 바랄 수밖에 없다. 좋은 작가가 젊어서부터 차근차근 성장하기 어려운 악순환이 계속 된다. 그나마 가능성 있어 보이는 단색화에 계속 매달리는 것도 이같은 어려움 때문이다.
당분간은 한국미술, 서양미술을 가리지 않고 고전의 인기가 다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0월 25일에 개막한 국립중앙박물관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의 누적 관람객이 22만 명을 넘어선 사실이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준다(1/30 기준). 이는 2016년 《이집트 보물전》 이후 최고 기록이다. 지난 해부터 지금까지 지속중인 이건희 컬렉션 인기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검증된 명품을 보며 안정감을 찾으려는 심리가 작용했다.
2021년 검증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투자 목적으로 구매했던 이들은 경제 불황으로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의 실패 경험은 결국 가치가 검증된 고전으로 눈길을 돌리게 만들어 줄 것이다. 사람은 어려운 때일수록 고전을 찾는 경향이 있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 이후 한국 출판시장에서 고전, 인문학과 관련된 자기계발서가 크게 유행했던 사실도 이를 잘 보여준다. 자신의 외부 상황이 암울할 수록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면에서나마 안정감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투자의 관점으로 미술시장에 들어서는 것은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큰 데다가 여러모로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혹시 누가 물어본다면 나는 향후 10년을 바라보고 고전의 좋은 작품을 사시라고 권하고 싶다. 비록 성장세가 폭발적이지는 않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꾸준히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고전의 매력이고 지난 미술시장의 흐름이 이를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