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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이장훈
이장훈
- 13분 걸림 -

9/13(수)

논문도 그렇듯이 전시도 어떻게 주제를 잡느냐에 따라 공부할 수 있는 지점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특정 시대의 특정 장르, 특정 시기의 미술교류사를 주제로 잡는다면 시대 전반의 경향이 어떻게 변화해갔는지, 전개의 양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폭넓은 시야로 공부할 수 있다.

반면 특정 인물을 주제로 잡는다면 주변 화단의 경향과 시대정신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위험이 있다.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대신 그 인물과 동기화를 이루는 것처럼 그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것은 덤이다.

미술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이해는 어떤 주제를 택하건 기반으로 삼아야 할 전제조건이다. 이를 고려했을 때 논문이건, 전시건 한 번쯤은 특정 인물을 주제로 삼아 그 인물과 동기화가 될 정도로 그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과정을 겪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고나면 어떤 사안이건 스스로 관점의 깊이가 조금은 깊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국립현대미술관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의 개막식을 다녀왔다. 흔히 우리나라 근현대 화단의 대표적인 2세대 서양화가이자 모더니스트로 평가하기에 이 전시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기에 의미를 더한다면 장욱진이라는 화가의 화풍이 어떻게, 왜 변화했는지를 추적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이해도 높일 수 있는 전시다. 개인 회고전의 특장이랄까.

성실한 자료 수집과 작품 큐레이팅, 미술사적 의의를 도출하기 위한 연구 등이 잘 어우러져 내실이 탄탄한 전시였다. 오늘은 중간중간에 반가운 분들과 인사도 나누고 어수선한 현장 분위기여서 차분하게 보질 못했지만 다시 날을 잡아 혼자 조용히 다녀오려고 한다.

화가의 성장과정, 생각의 변화에 비추어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전시가 분명 만족스러울 것이다.

9/14(목)

개막식 다음 날인 오늘 개인적으로 자료를 구할 일이 있어 어제에 이어 덕수궁에 다녀왔다. 마침 오늘은 날씨가 화창하여 다녀오는 길이 편했다. 온 김에 전시를 다시 둘러보고 있는데 김경란 아나운서와 함께 유튜브 생중계를 하고 있었고 우연한 기회에 관람객의 한 사람으로 짤막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메모장에 무슨 이야기를 하면 좋을지 메모를 했다. 전시의 장점을 몇 문장에 담으려면 미리 생각을 정리해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 관계상 준비한 내용의 1/3 밖에 말할 수 없었지만 원래 무엇이건 준비한 분량에 1/3만 내어보일 수 있다는 생각이라 괜찮았다. 1/3만 준비했으면 그만큼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더 적어졌을 것이다.

<인터뷰 준비 내용>

  • 개인의 회고전답게 장욱진이라는 인물의 예술에 대한 생각, 가족에 대한 생각을 작품에 비추어 침잠하듯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장욱진의 오래된 일기장을 한 장씩 넘겨보는 느낌이 들었다.
  • ‘전시는 작품에 집중하게 해줘야 한다’는 대전제를 고려했을 때 이 전시는 이를 충실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결국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기에 전시에서 이 전시처럼 많은 작품을 모아 보여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 전시 디자인도 작품의 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게 표현되어 있어 전시실에서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 불교사상, 동아시아 예술론을 예술적 기반으로 삼았고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를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표현했다. 이런 점에서 장욱진은 우리나라 대표화가라는 표현이 과언이 아니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 지금까지 장욱진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로 높이 평가하고 이 프레임에 맞춰 조명을 해왔다. 그러나 장욱진의 회화세계에 불교사상, 동아시아 예술론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 여러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이 전시가 지닌 여러 장점 중 하나다.

전시 소개

전시는 일단 화가의 초기작부터 시작된다. 간혹 평론가, 큐레이터들이 연대기적 전시 구성을 낡은 기획으로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봐선 안된다. 관람객에게 이 화가의 작품세계를 소개할 때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가를 두고 고민해야지, 전시기획 방식 그 자체를 우열로 놓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어떤 때는 이런 방식, 또 어떤 때는 저런 방식을 쓸 수도 있는 법이다. 사냥을 할 때 목표물을 잘 잡는 것을 우선으로 삼아야지 이 활이 신상품이고 저 활은 사용한지 오래됐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떤 기획을 하건 간에 리듬감을 부여하여 지루함을 덜어내고 전시를 통해 내고 싶은 메시지를 잘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는 데 있다. 이번 장욱진 전시는 작품을 연대기적으로 소개하면서도 따로 섹션을 마련하여 그를 성공한 서양화가로만 보면 안되고 그의 회화에는 불교사상과 동아시아 문예론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처음 소개하는 데에도 공을 들였다. 기획이 단선적이지 않고 수평과 수직을 잘 교차시킨 전시로 여겨진다.

제 4전시실인데 개막식 때 인파에 밀려 여기 먼저 보게 되었다. 처음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진열대를 가지런하게 감싼 한지 느낌의 종이였다. 장욱진의 회화가 서양 유채를 쓰지만 그 내용은 지극히 토속적인 점을 감안하면 작품의 배경으로 삼기에 매우 좋아 보였다. 장욱진 회화의 단순명료한 형태와 한지 특유의 정갈하면서도 조용한 성격이 잘 어울렸다.

그리고 뒷면에는 이렇게 장욱진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문장들로 채웠다. 진열대를 매달아 놓으면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데 도움이 돼서 종종 사용하곤 했다. 그때 이 뒷면도 채울 생각을 못했는데 이렇게 보니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추상적인 문양이 특징인 철화백자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 도자기와 장욱진의 그림이 너무 잘 어울린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의 전시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아카이브에도 힘을 준다는 데 있다. 아카이브는 단순한 보조 자료가 아니라 작품을 보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사료다. 전시를 준비할 때마다 고생은 많지만 분명 준비하는 사람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었을 것이다. 관람객 입장에선 감사할 따름이다.

장욱진, <먹그림 병풍>, 1981년경, 개인소장

기존 장욱진에 대한 연구는 유화 중심이고 간혹 이 작품과 같은 수묵화도 언급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1970년대 이후 장욱진의 불교관이 더 심화되면서 작품 전개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욱진, <팔상도>, 1976, 개인소장
장욱진, <한산습득>, 연도미상,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한산습득> 역시 불교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도록의 글에 설명이 잘 나와 있다.

그의 먹그림 가운데 ‘문수보현’으로 명명되는 작품이 있다. 문수, 보현보살의 화신인 한산과 습득을 그린 것으로 <한산습득>으로 작품명을 정정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미 장욱진의 그림에서는 조선시대 김명국과 김홍도가 그린 <한산습득>의 도상적 특징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친한 친구끼리 어깨동무하고 있는 모습의 ‘한산’과 ‘습득’으로 재구성하여 특유의 해학성과 천재성을 보여주고 있다.
장욱진, <산하초가>, 1988, 개인소장

앞서 인터뷰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 중에 하나가 장욱진의 회화에는 동아시아 문예관이 기반으로 작용한다는 점이었다. 유채를 주로 사용하기에 쉽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가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류의 생각을 밝힌 점, 그리고 이 작품처럼 비록 하얀색 안료를 썼지만 마치 수묵화의 여백처럼 보이게끔 하려 했던 점 등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장욱진, <풍경>, 1978, 개인소장
장욱진, <들>, 1986, 개인소장

그리고 이 작품들처럼 특히 세로로 긴 형태의 화면에 그림을 그릴 때는 마치 전통 산수화의 구도처럼 근경, 중경, 원경의 삼단 구도를 골격으로 삼은 점도 동아시아 회화 전통을 계승하려 했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풍경> 속 중경과 원경의 산의 형태는 고구려 고분벽화 <수렵도>의 산을 물결무늬로 그린 것과 닮아있다. 20세기 전반 조선과 일본의 화가들 사이에서 고구려 고분벽화가 미술의 원천 소스로 각광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장욱진의 이 작품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 가능하다.

대개 화가가 화면 장악력이 좋다는 말은 대형 작품을 치밀하고 핍진하게 잘 그렸을 때를 의미한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라던지, 중국 북송대 대형 산수화 같은 경우 말이다. 대형 작품도 많이 남긴 화가가 작은 작품도 그렸을 때는 소품류라 해서 전시에서 참고 자료의 성격 정도로 여겨진다. 실제 화가 본인도 어떤 예술적 사명감을 갖고 그렸다기보다는 간단한 선물용, 기념용으로 그린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욱진은 일생에 걸쳐 작은 작품을 주로 그렸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관점을 달리 해야 하지 않을까. 작은 작품들을 주로 그렸다는 점 역시 화가의 의도일테니 말이다. 이렇게 관점을 달리 한채 장욱진의 작품들을 보다 보니 크기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 안에서도 장욱진이 화면 장악력을 충분히 발휘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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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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