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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궁궐벽에 작품을 걸었을까?

이장훈
이장훈
- 7분 걸림 -
60년미술협회의 《벽전》, 1960. 10(사진 속 인물은 서양화가 김형대)

미술계의 메이저 기관이 지닌 보수성을 비판하며 참신한 아이디어로 우리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문화예술 스타트업이나 독립 기획자, 작가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기존의 주류와 차별화하고 독립성과 자율성을 주장하며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주류와 상당히 닮아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들이 늘어나는 현상 자체는 문화 선진국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 여기기에 항상 응원하는 마음으로 성공하길 기대한다.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으니 오랜 시간을 두고 관심있게 지켜보는 편인데 처음 기대와 달라 아쉬울 때가 종종 있다. 그들이 운영해나가는 회사나 주최하는 행사의 모습이 시작할 때의 모습과 다르게 주류의 언어를 닮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류의 대안이 되기 위해 나섰지만 어느새 주류가 흔히 하는 전시나 행사의 형식, 와인을 곁들인 네트워킹 파티, 틀에 박힌 워크샵 및 강연회 등과 크게 차이가 없는 모습을 보면 그들이 비판하는 주류와 무엇이 다른가라는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사실은 주류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처음부터 솔직했더라면 최소한 처음의 당당함에 반했던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영화 <킹스맨>의 유명한 대사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형식은 신념을 대변해주는 최소의 요건이다. 주류처럼 보이려 하지말고 자신의 신념을 어떤 형식으로 잘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Hans Namuth, <Jackson Pollock>, 1950, Archives of American Art, Smithsonian Institution

해방 이후 한국 미술계는 단체를 결성하고 정부 주도의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무난하게 혼란스러운 상황을 잘 정리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명성이 높았던 인물들을 요직에 앉히며 공백없이 대한민국의 미술 발전을 위한 일들을 진행시켰다. 그러나 좌익과 우익의 파벌 싸움이 벌어지고, 조선총독부가 그러했듯이 예술을 정부가 강권 혹은 통제하는 방식으로 운영했기에 세계 미술의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김기창, <가을>, 1934, 국립현대미술관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기형적으로 수용되어 왔던 일본색을 배제하려 했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서화 전통인 필선을 없애고 마치 도안처럼 명료한 형태로 채색하는 특징을 가진 일본화풍-김기창의 <가을>에서 볼 수 있는-은 배제되었고 수묵선묘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반작용이 있듯이 특정 화풍을 추천하는 일 역시 예술의 통제라고 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정부 주도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보수적인 심사위원들에 의해 동양화, 구상회화가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다.

1950년대 세계 미술의 가장 큰 조류는 추상미술이었다. 유럽의 앵포르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 모두 추상미술의 한 흐름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잭슨 폴록(1912-1956)도 이들 중 하나였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 흐름을 본 젊은 미술가들은 1957년에 한국성, 세계화, 현대화를 목표로 한 여러 단체를 결성하였다. 처음부터 추상미술을 추구했던 모던아트협회를 비롯해서 동양화로 시작했지만 추상회화로 나아간 백양회가 대표적이다.

60년미술협회의 《벽전》, 1960. 10

1960년에는 윤명로, 김봉태와 같은 젊은 추상화가들이 관전에 저항한다는 의미를 담아 덕수궁 궁궐벽 바깥에 작품을 걸어 전시를 개최하였다. 이를 《벽전》이라 한다. 당시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비롯하여 관립 전람회는 주로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했기 때문이다. 마치 살롱전에 낙선한 인상주의 화가들이 근처 스튜디오를 빌려 전시를 자체적으로 개최했던 것과 유사하다. 어떤 공간도 아니고 야외 벽에 작품을 걸 생각을 했다니 지금 시각으로 봐도 상당히 파격적인 형식의 전시다.

1960년에 국전에 저항하기 위한 퍼포먼스성 전시인 《벽전》은 작품 자체의 혁신성(추상미술)과 메시지를 소개하는 형식의 파격성 면에서 한국미술사의 기념비적인 전시로 평가받는다. 1961년 김형대의 추상회화 <환원B>가 최고상인 국가재건회의의장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최고상을 수상했던 수많은 구상회화는 현재 잊혀진 그림이 되었다. 미술사에서도 역사적 사실의 확인 차원에서 언급되는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추상회화는 현재 인기리에 개최되는 한국 근현대미술 전시에서 한 축을 담당하거나 화가 개인전이 열릴 정도로 생명력이 유지되고 있다. 문화를 다루는 사람-창작, 기획 모든 분야에서-에게 어떤 신념을 갖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좋은 사례로 생각된다.

* 매주 목요일 밤, <글이나그림>의 미술 에세이가 발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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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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