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그림이 가슴에 남을 때가 있다.
언제로 돌아가고 싶나요?
한 때 술자리에서 자주 꺼내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해로 돌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가장 추억이 담긴 때가 언제인지를 들으면 그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데 도움이 되기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추억에 젖은 눈으로 당시가 왜 좋은지를 설명하며 생기가 도는 얼굴을 보면 나도 함께 설렐 수 있었다. 나에겐 2001년이 그랬다.
2001년이 딱히 내게 좋은 일들만 가득했던 때는 아니었다. 군입대를 앞두고 있어 학교 공부부터 모든 것에 의욕이 없었고 매주 새벽에 유럽 축구를 보고 축구 게임과 스타 크래프트를 하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으며 입대 날짜만 기다리던 때였다. 저녁이 되면 느지막이 준비해서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가는 모습이 당시 나의 일상이었다. 무언가를 성취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행복한 날들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2001년이 떠오르는 이유는 어쩌면 아무 것도 안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일을 해야 된다던지, 논문을 써야 되는 등 그 어떤 의무도 없었던 시기였다. 오롯이 내 마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때여서 그때의 풍경과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 게 아닐까. 2001년에 개봉했던 영화 <봄날은 간다>가 여전히 내게 인생 영화이고, 토이 5집의 <좋은 사람> 뮤직 비디오는 유럽에 가고 싶은 마음을 더욱 크게 해주었다. 대학 친구들과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나 시간을 때우고 술을 마셨던 강남역 타워 레코드를 중심으로 한 거리 풍경은 2001년의 기억 한 곳에 남아있다.
<봄날은 간다>, <좋은 사람> 뮤직 비디오, 타워 레코드 앞 풍경 모두 이미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지는 추억을 소환하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미지 속에 구체적인 내용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상관없다. 어쩌면 없을수록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데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강남역에서 2001년 몇 날 몇 시에 누구를 만나 무엇을 했는지 등 세세한 기억은 전혀 남아있지 않은데도 그때의 풍경이 추억으로 남은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원계홍의 <수색역>과 영화 <봄날은 간다>

성곡미술관에서 원계홍이라는 낯선 화가의 전시 《그 너머-원계홍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에 유학을 가서 서양미술을 배우고 돌아온 그의 행적은 여느 근현대 화가들과 다를 바 없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화단에서 활동한 시기도 매우 짧은 탓에 거의 알려진 바 없는 화가다. 일찌기 그의 그림을 귀하게 여겨 수집했던 두 명의 컬렉터 덕분에 이번 전시가 성사될 수 있었다.
원계홍은 화업 초반에는 세잔의 영향을 받은 정물화를 주로 그렸고 만년에는 도시 풍경에 집중했다. 그의 풍경화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는 풍경 속에 인간이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건물의 형태가 기하학적으로 환원되어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색은 원색 그대로를 주로 활용하였다.
작품을 처음 보자마자 떠오른 것은 근처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이었다. 두 화가 사이의 영향관계는 전혀 없지만 결과적으로 서로 비슷한 화풍을 갖고 있다. 다만 에드워드 호퍼의 도시 풍경화는 철저하게 제3자의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고, 원계홍의 작품은 관찰자의 시각보다는 마음 속의 풍경을 꺼내놓은 듯한 느낌이 강하다는 데 서로 차이가 있다. 원계홍의 풍경화에는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아서 조르조 데 키리코의 작품처럼 초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다.

풍경 속에 인물이 등장하면 그들의 옷차림이나 행동으로 인해 풍경 자체에서 받는 느낌보다 사건에 주목하게 된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1942)은 도시의 스산한 밤풍경보다 저 남녀는 연인인지, 어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건지 등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감상자 자신의 추억에 잠겨 그림을 음미하기 보다 화면 속 이야기에 우선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 원계홍의 <수색역>(1979)은 세부 묘사를 자제하고 그림의 시점을 읽을 수 있는 인물들이 없어 나의 추억에 기대어 감상하게끔 배려해준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남자 주인공 상우(유지태)의 심정을 암시하는 장면 중에 하나가 함께 사는 할머니와의 추억이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남편을 마중하기 위해 습관적으로 수색역에 나가 대합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시곤 한다. 수십 년 전에 기관사였던 남편에 대한 기억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할머니를 모시러 상우는 자전거를 타고 수색역에 가는 게 흔한 일상 중 하나다.

상우는 언제나 듬직한 손자답게 조용히 할머니를 달래 모시고 온다. 은수(이영애)와 헤어지고 심적으로 많이 지쳐있을 때도 늘 해오던 대로 할머니를 모시러 수색역 대합실로 간다. 그러나 이 날은 평소와 같이 들어가기 싫다며 고집을 피우는 할머니에게 상우는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낸다. 그러자 할머니는 조용히 눈깔 사탕을 하나 꺼내 상우 입에 넣어줄 뿐이다.
사랑의 무게를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겠지만 손자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 수십 년간 간직해온 그리움의 사랑이 젊은 연인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보다 더 깊고 무게감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옛 수색역의 낡은 대합실은 트렌디한 장소보다 이를 표현하기에 매우 적절한 장소가 되었다. 내게 수색역은 이런 추억이 담긴 곳으로 남아있다.
추억은 일부러 기억했을 때보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현듯 떠오를 때 더 그립고 강렬해진다. 원계홍의 <수색역>은 <봄날은 간다>를 통해 나를 2001년으로 데려가 주었다. 만약 그림 속에 작품 제작시기인 1970년대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있었으면 별다른 감흥없이 보고 넘어갔을 듯하다.
그림은 친절할 때와 무심할 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종교화처럼 세부 도상을 충실하게 담아 친절하게 사람들의 신앙심을 고취시켜야 할 때가 있다. 반면 두 번 붓질할 일을 한 번에 그쳐야 할 때도 있다. 불친절하다는 말을 감수하고서라도 한 번 더 칠하고 싶은 욕심을 참으면 이 때는 불친절이 아니라 여백으로 바뀌게 된다. 이 여백은 감상자가 채워주며 더욱 풍성한 그림으로 완성된다. 때로는 참견에 가까운 조언을 건네는 사람보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말을 아끼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릴 때가 있듯이 그림도 무심한 그림이 가슴에 남을 때가 있다.
* 매주 목요일 밤, <글이나그림>의 미술 에세이가 발송됩니다(유료 구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