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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의 추상조각에 깃든 서예론

이장훈
이장훈
- 6분 걸림 -
김종영, <작품 65-2>, 1965, 나무, 김종영미술관(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미술관에 書》 전시). 설명적인 요소를 제거하여 원형으로 환원해 제작한 추상조각이다. 회화의 원형으로 돌아가 서예의 필선을 활용해 그린 이응노의 <생맥>과 함께 전시된 모습이다. 두 작품 모두 조형언어의 기본까지 돌아가려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다.

미술을 회화, 조각, 공예 등으로 분류해서 보는 것은 서구의 관점이 적용된 결과다. 이 관점은 현재도 지속 중이기 때문에 미술가를 정의할 때 화가, 조각가 등으로 구분해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근대에는 서예를 미술로 보지 않으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1932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서예부를 폐지하고 사군자는 동양화부에 편입시킨 후 그 자리에 공예부를 설치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역시 서양의 언어와 문법의 틀에서 동아시아의 시서화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각과 서예 모두 높은 예술적 성취를 보였던 김종영(1915~1982)의 미술은 어떻게 봐야 좋을까? 일단 그는 한국 추상조각을 대표한다고 평가받을 정도로 조각을 주요 장르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서예도 조각 못지 않게 많이 남겼는데 얼핏 함께 보기 어려운 두 장르를 모두 다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긴 하다. 그래서 그의 미술에 대해 논할 때는 조각은 조각의 언어로, 서예는 또 따로 구분해서 바라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김종영은 재료가 본래 가진 성질을 그대로 드러내고 단순한 형상을 기본 조형 요소로 활용하여 1960년대 이후 순수 추상 조각을 완성하였다. 회화를 평면으로, 조각을 덩어리로 순수의 영역까지 환원시키는 것을 참된 예술정신 발현의 기초로 여겼던 그는 서예 역시 추상미술과 마찬가지로 가장 순수한 조형의식의 구현으로 바라봤다.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그는 1960년대 이후 서예의 조형원리를 적용한 순수 추상조각을 완성하였다.

김종영은 불필요한 새김을 줄여 원형을 살림으로써 자연의 원리를 추구하는 것을 ‘불각(不刻)’이라고 하였다. 그의 ‘불각의 미’는 조각뿐만 아니라 서예에도 적용되었다. 회화를 평면으로, 조각을 덩어리로 순수의 영역까지 환원하는 것을 참된 예술정신 발현의 기초로 여겼던 그는 서예 역시 가장 순수한 조형의식의 구현으로 바라봤다. 가장 원초적인 조형언어로 회귀한다는 점에서 김종영의 조각과 서예는 불가분의 관계로 함께 바라볼 필요가 있다.

김종영이 서예에 대한 이해가 탁월했다는 점은 “소위 서예 대가라는 사람이 완당의 예술을 보편성이 없다느니 그 기이한 서법을 배울 수도 없다고 공언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고 비판한 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와 달리 1980년대의 김정희 서예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았음에도 김종영은 김정희 서예의 힘있는 예서(隸書)를 주목하며 “완당의 글씨의 예술성은 리듬의 미보다는 구조의 미에 있다”고 극찬하였다.

김종영, <유희삼매(遊戲三昧)>, 연도미상, 92x18, 김종영미술관
김정희, <유희삼매(游戏三昧)>, 「완당집고첩(阮堂执告帖)」, 19세기, 종이에 먹, 18.0×414.0, 김종영미술관

<유희삼매(遊戲三昧)>는 김종영이 소장하고 있던 김정희의 『완당집고첩』 속 「유희삼매(遊戲三昧)」를 임모한 작품이다. 김종영은 휘문고등보통학교 2학년으로 재학할 당시 중국 당(唐)의 안진경(顏眞卿)이 해서(楷書)로 쓴 <이현정비>의 일부를 임모한 작품으로 「제3회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에서 일등상을 수상한 바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가학으로 익힌 서예학습의 결과이다. 이후 김종영이 한 명의 미술가로 성장하는 기반에는 언제나 서예를 통한 글씨의 조형성과 그 의미에 대한 깊은 인식이 자리하고 있었다.

김종영, <근도핵예(根道核藝)>, 연대미상, 종이에 먹, 131.0x33.0, 김종영미술관

중국 한(漢)의 <한고익주태수북해상경군명>에 나오는 한 구절을 쓴 이 <근도핵예>는 “도를 근본으로 삼아 예를 견실히 한다”는 의미다. 예술을 재도론의 관점으로 바라본 김종영의 전통적인 문예관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전서(篆書)의 필의가 남아있는 한편, 비백(飛白)과 방형(方形)의 자체도 함께 확인된다. 이는 서한(西漢)시대의 고예(古隸)에서 동한(東漢)시대의 팔분(八分)으로 이행해가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특징으로, 김종영의 폭 넓은 서예학습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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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History

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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