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드문 교토국립박물관

지난 주말에 교토에 다녀왔다. 교토에 간 것은 5년만이었다. 교토는 내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도시다. 석사논문을 18세기 일본 남화에 끼친 중국 회화의 영향으로 썼는데 핵심 화가들이 대부분 교토, 오사카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이었다. 군대를 다녀오고 간 어학연수는 도쿄로 갔고 그 후에도 도쿄에 간 횟수가 훨씬 많은데 도쿄보다 교토와 관련된 문헌을 더 많이 봤다. 옛 지명까지 도쿄보다 교토가 익숙할 정도다. 정작 살아본 적도 없는데.
교토대학교에서 유학중인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학교 기숙사에서 머문 적이 있다. 친구가 수업을 듣는 동안 교정을 산책하며 기다렸다.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에서 나오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던 친구를 보며 박사과정을 이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가 무척 부러웠다. 일본미술사를 공부할 거면 일본이 아니라 영국으로 유학을 가는 게 차라리 낫다는 교수님의 조언을 듣고 포기했지만 그래도 젊은 시절에 단순한 어학연수가 아니라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해 외국에서 지내는 시간을 포기한다는 게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았다.
오지은 작가의 『익숙한 새벽 세 시』 에세이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가슴에 남아있다. 텀을 두고 한 번씩 꺼내 읽는 에세이는 신형철 교수의 책 외에는 처음인 것 같다. 이 책은 본래 가수인 저자의 노래와 동일한 제목으로 일상에 지칠 무렵 교토로 훌쩍 떠나 그곳에서 머물던 시기에 쓴 에세이다. 특별할 것 없는 낯선 도시에서의 일상과 느낌이지만 같은 것을 표현해도 섬세하게 풀어나가는 문체에 지금까지도 매료되어 있다. 고요함과 번화함이 공존하는 고도(古都) 교토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책이다.
박물관에서 일본미술 특별전을 준비할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점은 일본인 미술사학자의 평가를 받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놔야 그렇지 않아도 이러쿵저러쿵 SNS에 말하기 좋아하는 셀럽형(?) 학자들의 뒷말을 잠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학계는 자국 미술의 개성이 많이 드러난 채색화 연구자가 많고 동아시아 문인화 전통과 밀접한 남화 연구자는 매우 적다. 덕분에 어렵게 교토에 계신 교수님을 모실 수 있었다. 한국으로 모신 후 함께 명동에 있는 호텔에 머물며 내 차로 박물관을 출근하듯 오가며 일본 미술 소장품 전부를 평가받았다.
선생님의 평가를 옮겨 적으며 아주 많은 공부가 되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공부랄까. 일본 작품 감정부터 양식분석 등 책과 논문으로 알 수 없는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이 때가 인연이 되어 가끔씩 연락을 드렸고 작년 연말에는 도쿄국립박물관에서 하는 개관 150주년 기념 《국보전》 티켓 확보에 실패했을 때 교수님께서 학예실에 연락해 관람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이후에도 교토는 출장차, 여행차 간간이 가곤 했다. 갈 때마다 도쿄와는 분위기가 확실히 다른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도쿄 시내가 번화함의 극치를 추구한다면 교토는 번화함과 고풍스러움의 공존을 중요하게 여기는 느낌이었다. 건축부터 도로까지 모든 것이 분명 오래되어 보이고 낡은 것임엔 틀림없는데 잘 관리해서 깨끗했다. 도쿄의 정신없이 거미줄처럼 뒤섞여버린 지하철이 교토에는 많이 없다는 점도 깨끗함에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지하철역 주변은 지저분해지게 마련이니 말이다.
지난 주에 교토국립박물관으로 향하면서 한 가지 기대하는 바가 있었다. 마침 요즘은 특별전이 없으니 사람이 거의 없어 마음을 뉘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었다. 7, 8월 두 달 동안 사무실 이사, 집 이사가 겹치며 많이 지쳐 있었다. 동시에 외부 학자들을 처음 초빙하여 진행한 <중국미술사 특강>을 긴장감 속에 꾸려 나가야 했고, 10월에 떠날 <대만 아트투어> 준비도 함께 해야 해서 이번처럼 메모가 생명처럼 느껴진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막 힘들다, 죽겠다 앓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과 마음의 체력이 점점점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느낌은 분명 받고 있던 차였다.
가서 그냥 쉬다 오고 싶었다. 전투적으로 작품들을 보고, 도록을 사고 싶지도 않았다. 다행히 기대했던대로 교토국립박물관은 매우 한산했다. 아무리 그래도 국립박물관이고, 고미술 애호가들이 많은 일본인데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물론 전시실 내부에는 연세 지긋한 분들이 꽤 계시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숨쉴 공간이 많았다. 설렁설렁 산책하듯 전시실을 둘러봤다. 그리고 박물관 로비에 앉아 아래와 같이 짧게 단상을 메모했다.

지난 주말 인적 드문 교토국립박물관



2018년 《국보전》을 할 당시의 교토국립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