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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미는 어떻게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특징이 되었을까?

이장훈
이장훈
- 9분 걸림 -
개성부립박물관(via. 수원광교박물관)

여백의 미, 무기교의 기교, 무심함, 자연미 등은 한국미술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대표적인 개념들이다. 미술뿐만 아니라 외국에 한국의 문화를 소개할 때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만큼 한국문화사에서 대표성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너무 자주 소비된 감도 있어 이제는 전시나 행사에서 이 개념들을 활용하면 식상함마저 느껴진다.

‘세밀가귀(細密可貴)’라는 말이 있다. “세밀함이 뛰어나 귀하다고 할 수 있다”는 의미로 중국 송대의 서긍이라는 인물이 고려의 나전을 보고 평한 용어다. 한국미술사에서 고려의 나전과 청자 그리고 불교회화, 통일신라의 불교조각, 조선의 회화와 각종 공예품 등 세밀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은 늘 있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제치고 어째서 여백, 무기교, 자연미 같은 개념이 대표성을 갖게 되었을까?

우현 고유섭

‘무기교의 기교’, ‘구수한 큰 맛’, ‘무계획의 계획’은 우현 고유섭(1905-1944)이 한국미술의 특성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고유섭은 한국미술의 역사를 미술사 방법론으로 처음 정리하여 한국미술사 및 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일제강점기 당시 개성부립박물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기도 한 그는 짧은 생애였지만 한국미술사의 기틀을 마련할 정도로 의미있는 연구를 다수 남겼다. ‘무기교의 기교’, ‘구수한 큰 맛’, ‘무계획의 계획’ 등은 그가 논고를 통해 제시한 개념이다.

이 개념들을 요약하자면, 한국미술은 균형에서 벗어나있고 화려함보다는 담백함을 추구하며 시끄럽기보다는 고요함을 내포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미술에는 이와 상반되게 세밀하고 화려하며 이상적인 균형을 발휘한 작품도 많다. 물론 고유섭은 이를 외면한 것은 아니고 한국미술의 오랜 역사를 관통하는 특징으로서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을 제시한 것이다. 시대마다 특수한 미적 특징은 존재하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지만 그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한국미술의 대전제로써 이 개념들을 도출했다고 볼 수 있다.

조선고미술의 특색은 무엇이냐. 한마디로 고미술이라 해도 원시 조형으로부터 서기 1910년까지의 사이에는 수천백년의 세월이 끼어 있어 시대의 변천, 문화의 교류를 따라서 여러 가지 층절이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만한 변천을 통하여 흘러나오려는 사이에 ‘노에마’적으로 형성된 성격적 특색은 무엇이냐. 다시 말하자면, 전통적 성격이라 할 만한 성격적 특색은 무엇이냐. 우선 나는 ‘무기교의 기교’, ‘무계획의 계획’이라는 것을 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고유섭, 진홍섭 엮음, 『구수한 큰 맛』(다할미디어, 2005), pp-46-47.

학부 4학년 때 <미술사 강독>이라는 전공수업에서 고유섭의 논고를 모은 『구수한 큰 맛』으로 공부한 적이 있다. 3, 4학년만 들을 수 있는 전공 강독 수업답게 여러 원전을 대상으로 삼아 발표하고 토론하는 방식이었다. 이 수업을 들으며 그의 문장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음미하는 과정을 통해 미술사 전공생으로서 매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당시에 발표를 준비하며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왜 고유섭의 연구대상에는 회화가 적을까?’라는 의문이었다. 상대적으로 불교미술과 공예품에 관한 내용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고유섭은 자신의 연구범위를 명확히 제한했다.

조선에는 고려조부터 개성적 미술, 천재주의적 미술이라 할 중국의 문인화가 일부 유행되기는 하였으나, 중국에서와 같이 뚜렷한 개성 문제, 천재주의가 발휘된 것이 아니요, 다분히 이 민예적인 범주에 들어 있었고, 개성적 요소, 천재주의적 요소는 극히 적은 특수 예를 이루었을 뿐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서민사회,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못하였던 데도 큰 이유가 있을 듯하다.

고유섭, 진홍섭 엮음, 『구수한 큰 맛』(다할미디어, 2005), p. 48.

고유섭은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문인화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한국미술의 특징을 도출하기에 적절한 사례가 될 수 없다고 봤다. 더불어 예술품이 아니라 ‘민예적’인 차원으로 여겼다. ‘천재주의적 요소’가 극히 적다는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조선의 문인화는 작가의 개성대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린 미술(Fine Art)이 아니라 생활과 밀접한 민예의 차원에서 제작된 것으로 평가했다.

이처럼 고유섭이 제시한 한국미술의 대표적인 특징은 민예적인 범주에서 도출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석굴암의 건축 자체는 정제미가 있으나 그 속에 있는 조각은 정제되지 못하여 전체적으로는 율동성을 띠게 되었다고 봤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은 대칭을 이루고는 있으나 서로 다른 형태를 갖고 있어 비균제성을 갖게 되었다고 봤다. 도자기 등 공예품의 파격적인 형태도 마찬가지다. 세부 표현은 거칠지만 전체에 포용되는 분청사기는 무심하면서 구수한 큰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봤으며 이같은 특징들이 중국, 일본과 다른 한국미술의 특수성이라 평가했다.

최근에 발표된 논문(정혜린, 「구수한 큰 맛 : 번역된 자연미」, 『민족문화연구』 vol. 88,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2020. 08)에 따르면, 고유섭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을 통해 전해진 서양 미학의 방법론으로 한국미술을 바라본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고유섭이 비균제성과 무관심성으로 한국미술을 규정한 것은 칸트 이후 유럽 근대 미학의 관점을 반영한 대표적인 근거가 된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미술, 그중에서도 특히 서화(書畵)에서 진, 선, 미는 독립적인 개념이 아니었다. 진리와 도에서 벗어난 미는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겼기에 이 개념들을 다룰 때 복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근대 서양의 미술사와 미학에서는 독립적인 개념으로 바라보고 논지를 전개시켜왔다. 순수미를 기준으로 미술을 바라보는 관점 하에서 미술사학의 이론체계를 정립해왔다. 동양과 서양의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가 애시당초 다른 것이다.

그러나 고유섭은 서양의 관점을 기반으로 한국미술을 바라봤다. 따라서 서양에는 없던 시와 서예와 회화가 하나가 되는 것을 추구한 한국회화는 논의에서 배제시킬 수밖에 없었다. 「구수한 큰 맛 : 번역된 자연미」 논문에서 저자는 고유섭이 한국미술의 특징으로 자연미를 도출한 점 역시 서양은 인간중심, 동양은 자연중심이라는 근대 서양의 이분법적 구분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고유섭이 제시한 ‘무기교의 기교’, ‘비균제성’, ‘자연미’ 등 한국미술의 특징은 한국미술사 연구의 공과 과가 명확하다. 미술사학이 정립되기 전 최초의 미술사적 서술이라는 성과와 서양의 시선으로 한국미술을 볼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한계가 공존한다. 그럼에도 그의 이러한 개념은 여전히 전시, TV의 문화 관련 프로그램 등에서 고민없이 간편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제는 여기에서 벗어나 시대에 걸맞는, 최신의 연구성과를 반영한 개념을 사용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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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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