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예술을 통제할 때

러시아 추상미술의 시작
20세기 초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은 유희적이고 예술지상적인 미술이 아닌 생산과 노동, 그리고 기계에 대한 예찬을 중시했다. 자연 재현 중심의 전통 회화를 거부하고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실용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1917년 발발한 러시아 혁명의 이념과 궤를 함께 했다고 할 수 있다. 광선주의, 절대주의, 구성주의, 구축주의 미술 등이 대표적으로, 형식은 추상미술에 포함된다.
절대주의의 카지미르 말레비치(1879-1935)는 가장 순수한 형태를 목적으로 입체주의에서 더 나아가 현실의 형태가 다 사라지고 기하학적 형태만 남을 때까지 단순화하였다. 그는 재현 위주의 전통 미술은 허상을 재현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봤다. 알렉산더 로드첸코(1891-1956)는 1921년 회화의 종말을 선언한 화가이자 사진가이다. 자연의 재현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조형요소의 구성을 추구한 구성주의 화가로서 1914년에는 최초로 컴파스를 활용한 기하학적인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렇듯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은 혁신과 급진성을 띠고 있었다. 혁명으로 정권을 차지한 레닌의 볼셰비키는 서방의 미술을 퇴폐적이고 자본적이라 여기며 이항대립의 개념으로 이들의 미술을 혁명 미술로써 비호하였다. 대신 새롭게 건설할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에 기여하길 바라며 실용성을 강조하였다. 사회주의 이념 전파를 위한 시각 매체가 되어주길 강요했다.

처음에는 러시아 미술가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서방과 달리 바르바라 스테파노바(1894-1958)같은 여성 미술가들이 활동하기 좋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다만 미술가들의 자유로운 발상을 지지하던 볼셰비키도 점차 국가 건설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길 강요하며 이를 억압했고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미술가들 중에는 서체, 책, 의상, 건물 등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로 분야를 바꾼 이들도 있었다. 기하학적인 형태에 원색을 주로 구사하던 그들의 화풍은 디자인 요소로 활용하기에 적합했다. 이들의 디자인은 20세기 전반의 포스터, 서체, 책 디자인, 가구, 건물 등 많은 분야에서 원천이 되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득세
역사의 아이러니함이랄까. 1924년 레닌이 사망하고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이들의 추상미술은 철저하게 탄압받았다. 이들의 미술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독재 체제를 구축하려는 스탈린 지배 체제에서는 반동으로 보였던 것이다. 물론 레닌도 딱히 예술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이를 후원했다고 할 수는 없다. 새로운 사회에 이바지하라는 목적에서 하나의 수단으로만 봤을 뿐이다. 그래서 로드첸코처럼 예술가가 아닌 생산이 더 중시되는 디자이너로 활동한 구성주의 화가들도 있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노동자를 영웅시하고, 그들의 일상 자체가 혁명이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차지하였다. 전통 회화처럼 원근법을 사용한 공간에 사실적으로 그린 인물들이 배치되는 형식으로 주인공은 당연히 러시아 사회주의 정권하에서 행복한 인민들이었다. 19세기 서유럽의 사실주의,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예술의 본질을 추구하며 점, 선, 면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혁신적인 미술로 전개되었다가 정치 논리에 의해 다시 과거로 돌아간 셈이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이 사실주의 양식은 독재 체제를 찬양하고, 독재자를 우상화하는 미술로 변질되었다.
1960년대 한국의 추상미술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 적이 있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의 일이다. 권력의 속성이 본래 이런 것일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성공만 한다면 바로 권력을 쥐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들어가야 할 작업은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국가를 위해 쿠데타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고 국민을 향해 최대한 설득하는 일이 필요하다. 박정희의 군사정권은 쿠데타의 정당성을 봉건 및 친일 잔재 타파-결과적으로는 그 반대였지만-에서 찾고 근대화된 국가의 건설을 표명하였다.

해방 이후 시작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는 이종상의 <작업>처럼 현실적인 주제를 사실성 높게 묘사한 구상미술이 주류였다. 그러나 1950년대 화단에는 미국과 일본을 통해 유럽의 앵포르멜 미술과 미국 추상표현주의 미술이 유입되고 있었다. 1955년 김기창이 “지금 추상미술의 성행이 세계적인 풍조로 되어 있는 이상 비단 우리만이 케케묵은 상아탑에 깊숙이 앉아 있기만 할 수는 없을 때”라고 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미술전람회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면모를 보인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1957년에 모던아트협회, 현대미술가협회와 같은 진보적인 미술단체들이 결성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에 주목하여 현재 학계에서는 1957년을 한국 현대미술의 기점으로 여기고 있다.
기존 회화에서 벗어나 변화를 꾀하고자 했던 추상미술가들의 활동은 기성 체제의 전복을 꾀한 박정희의 군사정권의 이해와 논리 구조상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러시아 혁명 직후 레닌의 비호 하에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미술이라는 명목으로 추상회화가 화단의 주류가 되었던 것처럼 1961년의 우리나라 화단에서도 추상회화가 부상하게 되었다. 1961년 국전에서 김형대의 <환원B>가 국가재건회의의장상을 수상하고 국전 바깥에 맴돌았던 추상회화가 대거 입선한 사실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언론기사나 『한국군사혁명사』를 통해 박정희의 군부가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변화를 강조하고 앵포르멜 미술에 대해 지지함을 확인할 수 있다. 더 나은 조국을 건설하기 위한 혁명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던 군부와 기성의 보수적인 미술에 대항하여 세계 미술계의 조류에 발을 맞추고자 했던 추상화단의 이해가 우연찮게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전통의 중시와 민족문화의 창달
소련의 추상회화 탄압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박정희의 군부정권은 제3공화국(1963-1972)을 맞이하며 미술을 대하는 기조가 바뀌었다. 이제는 체제가 안정되었다는 판단때문일까. 쿠데타 직후에 추상회화처럼 기성에 대항하는 것을 옹호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방향성을 보이기 시작한다. 1968년 발표된 국민교육헌장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것은 미술을 대하는 정부의 관점을 대변한다. 전통문화, 민족적 정체성을 반영한 고유의 것이 즉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관념 하에 다양한 문화정책을 시행했다.

1961년에 현재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을 설치하고, 1962년에 지금도 유효한 문화재보호법을 마련했다. 1966년과 1968년에는 각각 현충사 정비사업과 이순신 장군 동상 제작을, 1971년에는 경주고도 개발사업을 추진했다. 순수하게 문화재 보존과 복원을 해야 한다는 목적도 물론 있었겠지만 국민은 마땅히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여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이 기저에 위치해 있었다. 이순신 장군을 신성화하는 각종 문화사업-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와 연극 개최, 기념행사, 동상 제작, 통영시 이름을 충무로 바꾼 일 등-은 이순신의 아우라를 입고 싶었던 박정희 개인의 욕망과도 일치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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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국사책이나 독립기념관 같은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민족기록화 역시 이 시기에 정부 주도로 진행된 사업이었다. 민족기록화는 우리의 역사를 회화로 재현하여 보전한다는 의미에서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승리의 역사만을 강조하는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라는 점과 고증 문제, 시대와 다른 길을 걷는 양식 등 당시에도 비판이 많았다.

민족문화,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찾는 시대 분위기 속에서 명맥을 유지해오던 수묵화는 지금과 달리 미술시장에서 각광을 받았다. 조선의 마지막 화원이라 평가받는 안중식과 조석진에게 그림을 배운 이상범, 노수현, 변관식 등 동양화가들의 수묵화는 지금의 단색화 열풍처럼 인기가 높았다. 이들의 작품은 신문사 주최 전시, 미술관 및 화랑들의 전시에 단골 주제로 다뤄졌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위작도 많이 생산되었다. 이 때의 수묵화 열기는 이후 30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시에서 전통회화 분야가 6%밖에 되지 않은 점을 생각하면 천지개벽의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추상회화 발전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득세, 한국의 추상회화 수용과 전통문화의 확산 모두 정치가 예술을 통제하면서 생긴 일이다. 러시아와 한국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서로 다른 체제를 택한 국가다. 그럼에도 체제와 상관없이 이렇게 미술의 판도를 바꿀 수 있었던 건 떠나 권력의 취향과 의지에 따라 흔들릴 수밖에 없는 예술의 본질적 속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 김미정, 「한국 앵포르멜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한국근대미술사학』 vol. 12,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4
- 샬롯 홀릭, 이연식 역, 『한국 미술-19세기부터 현재까지』, 재승출판, 2020
- 김영나, 『1945년 이후 한국 현대미술』, 미진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