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 About
  • Art News
  • Exhibition
  • Art History
  • Book
  • 로그인

지금 박경리 선생님의 『일본산고』를 읽어야 하는 이유

이장훈
이장훈
- 10분 걸림 -
일본산고 / 박경리(마로니에북스, 2013)

문화를 바라볼 때 층위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다. 역사적 가치, 자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아름다움에도 여러 층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편이 좋다. 같은 아름다움이라도 어떤 것은 인간의 7가지 감정,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에 딱 들어맞는 것이 있고, 어떤 것은 보다 높은 이상, 진리(眞)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둘 다 아름다움이라는 범주에 모두 들어가고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지 중 하나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예술에서 층위를 나누자면 후자를 보다 높은 층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문학에서 작품의 주제와 서사를 기준으로 아름다움의 층위를 구분할 수 있다면, 미술사에서는 작품의 주제와 그리는 자의 인품을 내보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붓놀림과 화면 구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서양미술은 논외다. 아름다움에 대한 관념과 그 시작이 우리와 아예 다르다). ‘심수상응(心手相應)’이라는 말처럼 마음과 손이 하나로 통해 그린 그림이 단순히 보기에 좋은 그림을 넘어 진(眞)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본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지난 10년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는 보기에 이쁘고, 화려한 작품도 많고, 이런 것들이 시장에서 통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이 부러웠다. 반대로 성리학적 사상의 틀로 예술을 재단한 조선시대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나마 어느 나라와 비교해봐도 화려하고 치밀했던 고려의 미술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로 작품을 더 많이 보게 되었고, 나름 작품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지금은 일본의 미술과 우리나라의 미술은 같은 범주에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서로 아예 필드가 다르다고 하면 이해하기 쉽다. 기본적으로 문화는 우열관계로 볼 수 없고, 특징으로만 봐야 하기 때문에 무엇이 더 좋고, 무엇이 덜하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어느 쪽이 감정과 본능을 넘어 이상가치에 도달하고자 하였는가라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제는 한국미술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via. 산토리미술관 전시 소개 영상(https://youtu.be/djpQ4WDoLEs)

이 사진은 작년 연말에 다녀왔던 일본 도쿄의 산토리미술관 전시실 전경이다. 사진에 보이는 <벚꽃 그림>은 하세가와파라는 모모야마 시대 최고의 직업 화가 그룹에서 제작한 작품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문을 받을 정도로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 그룹으로 성장했고, 현재도 이 작품을 비롯해서 내부 공간을 화사하게 만들어주는 화려한 장병화가 이들의 주특기였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어두운 전시실에 들어서자 마치 동굴에서 헤매다가 저 멀찍이 바깥으로 나가는 빛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작품의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함은 압권이었다. 하얀색 호분을 여러 겹 덧대어 칠한 벗꽃잎은 회화가 아니라 공예처럼 보일 정도로 양각의 볼륨감이 있어 작품에 입체감을 더해주었다. 그리고 배경 바탕으로 택한 금지는 마치 빛를 자체 발산하듯 화려함에 극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처럼 일본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은 치밀하고 화려한 특징을 갖고 있다.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인데 이는 사람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다. 현재 일본 문화하면 떠오르는 장르들 대부분이 그렇다. 현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무라카미 다카시 : 무라카미좀비》 전시도 같은 맥락에서 유명한 작품들이다.

《무라카미 다카시 : 무라카미좀비》, 부산시립미술관

예술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보는 즐거움, 듣는 즐거움 등을 넘어 감동을 준다는 데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일본미술의 이러한 특징은 층위의 시작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현대미술의 기본값인 ‘예술지상주의’, ‘예술을 위한 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무의미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술은 문화의 한 종류이고, 문화는 인간 활동의 하나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결국 예술은 인간의 여러 활동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설사 도달하지는 못할지라도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이상가치를 향해야 한다. 이 점이 결여된 예술은 아무리 ‘예술을 위한 예술’을 주장해도 공허한 외침으로 그칠 뿐이다.

눈을 즐겁게 하고, 보는 맛이 좋은 것은 그저 감각에 호소하는 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일본의 모든 예술이 이러하지는 않겠지만 경향성이 그렇다는 말이다. 마치 퍼포먼스를 펼치듯 아주 멋있게 붓을 휘둘러 스타일리쉬한 서예를 쓰더라도 보기에 멋있다는 것 이상을 느끼기 어렵다. 너무 스타일리쉬하달까. 오랫동안 바라봐도 질리지 않고 볼 때마다 새로움을 느끼게 해주는 신선한 맛은 화려함과 소박함 그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가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예술의 가장 이상적인 경지다. 일본미술의 예술적 경향은 극단에 치우친 게 많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화려하거나 아니면 아예 인위적으로 비워버리거나. 중간이 없다. 비워버린 것도 이렇게 해야 멋있다는 것을 알고 한 느낌이 강하다.

며칠 전 3.1절 기념식과 일본 강제동원에 관한 정부 발표를 보고 어지러운 마음에 박경리 선생님의 『일본산고』를 다시 꺼내 읽었다. 학술서가 아니기에 학술적인 근거를 제시한 책은 아니지만 그게 있어야만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경리 선생님처럼 시대를 꿰뚫는 안목의 소유자라면, 위대한 문인이라면 분명 그의 눈에만 보이는 문화적 통찰력이 있으리라 믿는다. 선생님은 문학을 예로 들어 일본문화의 특징에 대해 해석했지만 이 내용을 일본미술에 적용시켜도 충분히 통할 것 같다. 특히 ‘美의 관점(pp. 89-109)’에서 일본문화의 경향 및 특징에 대한 해석은 가장 가깝지만 잘 알지 못했던 일본에 대해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문화는 삶을 위한 틀이며 본이지 결코 죽음이나 칼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본질적으로 칼의 문화, 죽음을 미화(기만)하는 문화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진리는 아름답고 선하다 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진리이며 선하다, 선한 것은 진리이며 아름답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일본 문학의 탐미주의, 예술지상주의는 갇혀버린 사회에서 도피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선함도 진실함도 결여되어 있고 오히려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농후합니다.
괴기와 탐미는 약간씩 다르지만 상통하는 점이 많습니다. 감각에 충격을 주는 것에서 그렇고 보편성과 휴머니티의 결여, 윤리 부재, 반도덕적인 것에서도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특이하지만 출구가 없는 것도 비슷합니다.
일본 문학의 주류를 이루는 것이 바로 그 같은 특이한 세계인데 일본민족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로맨티시즘과도 무관하지 않고, 이런 것들이 통속으로 떨어지면 괴기는 괴담으로, 탐미는 외설로, 로맨티시즘은 센티멘털리즘이 되는 것입니다.
일본 문학 중에는 구성이 치밀하고 뛰어난 묘사력, 세련된 문장 등 우수한 작품이 있으나 대개는 주제가 약합니다. 그것은 일본 문화의 전반적인 경향이 아닌가 싶어요.
일본인의 특성의 하나인 결벽증은 넓고 깊은 곳에 스며들어야 하며 또 떠올라야 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에게도 그들 이상의 문제가 많습니다마는 그 많은 문제가 일본으로 말미암은 부분이 대다수를 점하고 있습니다.
후일 일본론을 쓸 생각입니다마는 너무나 학생들은 일본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고 사회 자체도 일본의 정체에 무관심하며 또는 일본을 모범으로 생각하는 부류의 확대되는 양상을 보며 걱정을 한 나머지 나로서는 이나마도 성급하게 엉성하나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꼭 해두고 싶은 말은 결코 일본을 모델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Book

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1 이달에 읽은
무료 콘텐츠의 수

이 달의 무료 콘텐츠를 모두 읽으셨어요 😭

구독하시면 갯수 제한 없이 읽으실 수 있어요!

Powered by Bluedot, Partner of Mediasphere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