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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복고(復古)는 또 다른 창조에 있다.

이장훈
이장훈
- 9분 걸림 -

인간은 현재에 비추어 흘러간 과거에 대해 미화하고, 그리워하며 추억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리 좋기만 했던 과거가 아니었을 때도 추억의 대상이 될 때가 있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두고 객관성, 합리성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며 굳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옛 일, 과거를 추억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과거를 추억하거나, 과거에 비추어 현재를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하려는 노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일 수도 있겠다.

더 좋은 상태를 기대하며 과거를 조명하는 것, 이를 두고 우리는 흔히 ‘복고(復古)’라고 부른다. 복고는 패션, 음악 등 문화의 많은 장르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는 복고라는 단어를 쉽게 접해왔고 덕분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복고는 단어 그대로 ‘옛 것으로 돌아간다’, ‘예전 상태를 회복한다’ 라는 의미이다. 미술에서도 복고 개념은 곧잘 사용되어왔다. 복고는 기본적으로 옛 것에 대한 추종이라는 개념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복고를 표방할 때는 대체적으로 고전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미술을 모범으로 삼았던 르네상스와 신고전주의 미술에 대해 설명할 때 고전주의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그렇다면 동양의 미술은 어떠했을까? 우선 복고를 추구하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듯이 인간의 본성 중 하나로 봐야한다. 따라서 동양이건, 서양이건 지역 구분없이 복고는 언제, 어디에서나 추구되어왔다.

복고는 동아시아 문예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중국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우선 중국회화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명나라 동기창(1555-1636)은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라고 하며 회화 학습의 중요한 단서를 제시하였다. 풀이하면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의 길을 여행해야한다”는 의미다. 이렇게 직역만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문장이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깊게 들여다보면 더 큰 가치를 깨달을 수 있다.

책은 앞서 살았던 사람들이 깨우친 지식을 쉽게 습득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다. 이 점을 상기해보면 “만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즉 옛 사람들의 이론, 뜻을 기본으로 학습해야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만리의 길을 여행해야한다”는 것은 회화의 대상이 되는 자연을 직접 보고 경험해봐야된다는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을 작품에 녹여내야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종합해보면 동기창의 “독만권서, 행만리로”는 옛 것을 추구하되 거기에 안주하면 그저 죽은 지식이 될테니 현실도 함께 반영해야 진정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즉 ‘복고’란 단순히 옛 것, 고전을 따라한다는 의미의 답습이 아니며, 이를 기반으로 하되 현실을 담아내어 자신만의 개성있는 변화를 시도해야 비로소 완전한 개념이 된다. 이같은 이론은 ‘복고주의(復古主義)’, ‘의고주의(擬古主義)’로 불리며 명나라 이전부터 문인사대부들을 중심으로 추구되어왔다. 그리고 동기창의 회화 이론이 1700년대 이후 한국과 일본에 크게 영향을 끼치면서 동아시아 미술에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되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진행 중인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은 한국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들을 “전통의 계승과 변화의 모색”이라는 측면에서 관람할 수 있는 전시다. 조선시대 회화의 전통은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그리고 일제의 강제병합이라는 시대의 큰 변혁기를 맞이한 근대에도 지속되었으나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조금씩 변화를 가지기 시작했다.

본래 창조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개조하고 새로운 개념을 입혀가며 나오는 것이다. 근대의 회화 역시 갑작스레 창출된 것이 아니라 전통회화를 계승하는 가운데 새로운 경향, 즉 서양과 일본회화의 영향을 수용하며 우리에게 알맞은 것, 우리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변화를 가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근대회화를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인 청전 이상범(1897-1972)은 훗날 이렇게 회고하였다.

"(1930년대는) 중국화풍에서 그리고 새로이 침투하고 있는 일본풍에서의 독립, 우리 것을 찾자는 끈질긴 몸부림의 기간이었다. ... 우리나라의 언덕과 같이 느린 경사의 산과 초가집과 나무꾼을 발견하고 그러한 소재에 가장 어울리는 화법으로서 미점법을 발견해낸 것은 바로 이때이다."
이상범, <초동>, 1926, 종이에 수묵담채, 152.0×182.0, 국립현대미술관

이상범은 오랜 세월동안 영향을 받아온 중국회화에서 벗어나 우리나라만의 향토적인 풍경을 그리고 싶었고 이 때 발견한 것은 한국적인 풍경과 중국 송나라부터 대표적인 전통화법으로 사용된 미점법이었다. 미점법은 물기를 많이 적신 붓을 옆으로 뉘여 점을 찍듯이 칠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미점법을 쓰면 부드럽고 비에 젖은 듯한 촉촉한 산을 그릴 수 있는데 이상범은 이를 사용하여 우리가 어디에선가 보았을 법한 우리나라 산 특유의 모습을 완성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도 볼 수 있는 <초동>을 보면 언젠가 시골에 갔을 때 맡았던 것 같은 매캐한 연기 냄새도 날 것 같고, 젖어있는 황토빛의 흙이 절로 떠오른다.

이상범은 조선의 마지막 화원화가인 안중식(1861-1919)과 조석진(1853-1920)이 교수로 있었던 서화미술회 강습소에서 처음 미술교육을 받았다. 즉 스승들에게 전통회화 교육을 받으며 화가로 성장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개성을 더해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기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동양화에 크게 관심을 안가졌다면 동산방 화랑이 어색하겠지만 이 화랑은 우리나라 근현대 회화에서 중요한 매개자 역할을 한 곳이다. 한국 근현대 회화를 전공한 이들은 한 번쯤 가보거나 최소한 이곳에서 간행한 도록은 꼭 참고할 정도다. 갤러리로서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KIAF 같은 아트페어에서도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이번 전시는 동산방 화랑의 설립자인 동산 박주환(1929-2020)이 수집하여 기증한 작품 209점을 중심으로 마련되었다.

한국 근현대 회화는 동양화의 전통을 살리며 현대화를 꾀한 작품들과 서양화의 영향을 받으며 현대화를 꾀한 작품들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전자의 작품들을 주로 볼 수 있다. 소마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한국근현대미술전》은 후자에 속하는 전시이기 때문에 이 두 개의 전시를 모두 보면 균형을 이룬 전시관람이 될 것이다.

"후일 이들은 1970년대의 경제 성장과 전통문화의 부흥 정책을 바탕으로 원로 작가로서 다시금 조명받게 되는데, 1961년부터 표구사를 운영해오던 동산 박주환은 이들 작가와의 활발한 예술적 교류를 통해 작품 수집의 외연을 확장시켰다. 그중에서도 동산방화랑이 개최한 《근대 명가 4인전》(1982)과 현대화랑과 공동으로 기획한 《청전과 소정》(1985) 등의 전시는 근대 한국화가들의 역량과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함으로써 개별 작가들의 독자적 화풍에 대한 연구기반을 형성하는 데 일조하였다.”

《동녘에서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브로슈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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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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