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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기적보다 세금 납부를 더 크게 그리기 시작하다.

이장훈
이장훈
- 9분 걸림 -
마사치오, <성전세>, 브랑카치 예배실 왼쪽 부분, 1426-1482, 프레스코,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피렌체,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마사치오(1401-1428)의 <성전세>입니다. 마사치오는 르네상스 회화의 시작을 알린 화가로도 평가받습니다.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면 반드시 접하게 되는 화가인데 그가 28세에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을 알면 그의 업적이 새삼 더 놀라워집니다.

마사치오를 시작으로 원근법, 명암법 등 여러 고전주의 미술 기법들이 이후 수백년 동안 서양미술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래서 그를 르네상스 미술의 시초로 봅니다. 이 작품은 피렌체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벽화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이 오랜만에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자 성전세를 징수하던 세관원들이 베드로에게 “너네 선생은 성전세 안내냐?”라고 비꼬듯 물었던 것에서 비롯된 성경 속 이야기를 그렸죠. 당시 유대인들은 성인이 되면 성전 관리비 명목으로 반 세겔을 납부해야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욱해서 “울 선생님도 내실꺼다!!!”하고 돌아왔는데 예수님은 세관원들의 미욱함을 이해하므로 그냥 납부해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물고기를 잡으면 물고기 입에서 한 세겔이 나올텐데 그걸로 나와 너의 세금으로 내라고 했죠.

<성전세>는 이 이야기를 주제로 그렸는데 화면 왼쪽에 베드로가 물고기 입에서 세겔을 꺼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화면 가운데에는 성전세 왜 안내냐는 세관원들과 예수님 및 제자들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세관원에게 세금을 건네주는 베드로가 있습니다. 마치 “옛다! 그깟 세금 내고만다!”하는 것 같죠. 이렇게 이 작품에는 화면 왼쪽, 가운데, 오른쪽에 모두 베드로가 등장합니다. 일종의 스토리텔링 방식인데 재밌는 것은 이 작품을 통해서 르네상스 시대 당시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동양도 그렇지만 서양 역시 고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 중에 하나가 중요한 인물 혹은 장면은 크게, 덜 중요하거나 신분이 낮은 인물은 작게 그렸다는 점입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림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1차원적인 방식이죠. 아직 고대, 중세의 전통이 남아있던 초기 르네상스 시대답게 마사치오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전통도 종종 발견됩니다.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리는 혁신도 추구했지만 전통적인 면도 아직 남아있는 과도기적인 모습이랄까요?

이 작품은 화면 왼쪽의 베드로가 물고기 입에서 돈을 꺼내는 장면이 오른쪽의 세금을 납부하는 장면보다 상대적으로 작고 구석진 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즉 물고기 입에서 돈을 꺼낸다는 이야기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행한 기적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세속적인 일보다 덜 중요하게 처리된 겁니다. 만약 중세시대에 교회의 주문을 받아 화가가 이렇게 그렸다면 컴플레인 들어왔겠죠. 어쩌면 제 정신이냐며 큰 벌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지워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도 떡하니 성당 벽화에 남아 있습니다. 당시의 분위기가 이런 식의 표현이 용납되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앞선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가장 큰 차이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봤느냐에 있습니다. 중세에는 초점을 오로지 신에게 맞추어 그 외의 모든 것을 피조물에 불과하다고 봤습니다. 인간 역시 피조물이라는 범주에선 동물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심지어 인간이 살고 있는 지구, 자연은 하나님 곁으로 가기 전 잠시 머물다가는 공간에 불과하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중세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풍경화가 없습니다. 자연을 묘사해도 사실적인 비율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상징적으로 나무 몇 그루와 언덕을 그리는 정도로 표현하는 데 그쳤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에 이르면 상업의 발달에 따른 경제 발전, 그리고 자연스레 뒤따라 오는 세속적인 분위기가 형성됨으로써 내세보다는 현세의 즐거움도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자 인간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생기면서 중세에 비해 그 위상이 격상되었습니다. 피조물은 피조물이되 그래도 다른 피조물에 비해서는 이성을 가진 존재,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봤습니다. 그리고 로마 유물이 발굴되면서 인간 위상의 격상과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이르렀죠. 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 수많은 누드상과 누드화가 그 결과입니다.

마사치오의 <성전세>에 다른 비율로 묘사된 베드로의 행위, 즉 신의 기적을 행하는 모습은 작게, 세금을 납부하는 현실적인 모습은 보다 크게 그린 것 역시 이같은 분위기의 산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벽화로 남아있다는 점 자체가 당시 종교계에서도 이런 식의 표현이 용납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렇다면 세속적인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팽배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성전세>를 볼 때마다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읽을 수 있고, 당시 인간에 대한 관점의 변화까지 감지할 수 있다는 게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래서 미술사를 예술학이 아닌 인문학이라고 하나보다라는 생각도 새삼 갖게 되고요.

흔히 인문학은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문, 사, 철학이 포함됩니다. 미술사는 문, 사, 철학의 토양 위에서 피운 꽃, 즉 ‘인문학의 꽃'이라고 이야기하죠. 조금 오글거리는 표현이긴 합니다만 저는 이 말이 꽤 좋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게 공부하는 데 자부심을 갖게 해주거든요. 그 자부심은 어지간한 현실적인 어려움도 지탱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고요.

다만 한 발짝 옆으로 떨어져서 ‘그렇다면 문, 사, 철학 없이는 홀로 설 수 없는 수동적인 학문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도 견지하고는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 작품 그 자체만으로도 해석과 이야기를 생성할 수 있을 정도의 방법론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미술 작품에 써있는 글씨, 화가와 관련된 기록에만 의지하면 결국 여기에 우리보다 더 전문성을 지닌 문학자, 사학자, 철학자들의 연구에 종속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 당연히 참고하되 미술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논리, 해석이 필요하고 이는 작품 양식, 도상 등의 분석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뭔가 숨이 턱 막히긴 하는데 동시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미술사가 저에게는 아직(?) 꽤 매력있는 학문이긴 한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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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History

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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