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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경매에서 사오지 못해 두고두고 아쉬운 작품들

이장훈
이장훈
- 9분 걸림 -
김은호, <세조 어진> 초본, 1935, 국립고궁박물관

2016년에 평창동에 있는 서울옥션에서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작품이 대거 경매로 소개된 적이 있다. 미술 경매도 흐름이라는 게 있어 평소에는 그저 그런 작품들이 잔잔하게 소개되다가 어느 순간에 학계와 박물관들이 주목할 정도로 좋은 작품이 느닷없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다. 어느 개인 수집가가 오랜 세월에 걸쳐 신중을 기하며 수집했던 작품들을 경매에 내놓을 때가 주로 그랬다.

이럴 때면 박물관에서는 유물 수집 관련 학예사들을 출장보내서 일단 작품들의 수준이 어떠한지, 구입할 만한 것은 있는지를 보고 오게 한다. 마침 내가 일하던 박물관에서도 한국 근대회화 특별전을 막 끝낸 터라 근대회화 수집에 관심이 높을 때였다. 당시 경매에서 대대적으로 소개된 김은호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근대 화가 중 한 명이기도 하거니와 화재로 대부분 소실된 조선 왕의 초상, 즉 어진을 그린 화가라는 상징성때문에 더욱 중요한 인물이었다.

김은호, <세조 어진>을 모사하는 모습, 1935

어진을 그리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도사(圖寫)’, ‘추사(追寫)’, ‘모사(模寫)’로 ‘도사’는 왕이 살아있을 때 직접 얼굴을 보고 그리는 것이고, ‘추사’는 왕이 세상을 떠난 후에 그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사’는 어진이 훼손되었을 경우 남겨놨던 범본(기초 자료)을 바탕으로 다시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털 한 올까지 똑같이 그리는 회화 전통이 있었던 우리나라 초상화 제작방식을 놓고 볼 때 실제 왕의 얼굴과 가장 닮은 것은 ‘도사’다. 이와 더불어 도사할 때 기초 자료로 먼저 그려놨던 범본을 보고 그린 ‘모사’가 가장 실물과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추사’는 아무래도 어진화사(御眞圖寫)가 왕이 살아있을 때 그 왕을 모신 적이 있던 사대부들의 기억을 듣고 그린 것이기에 앞의 예보다는 정확성에서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

김은호는 위의 사진처럼 창덕궁 신선원전에서 세조의 어진을 새로 모사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어진을 포함하여 조선시대에 제작된 어진들은 1954년에 화재로 대부분 소실되었다. 화재에서 살아남았던 어진은 태조 어진 1점, 영조 어진(연잉군 시절 1점 포함) 2점, 철종 어진 1점, 익종(순조의 세자) 어진 1점, 그리고 고종 어진 초본 몇 점과 순종 어진 2점 정도다.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어진들인데 안타까운 일이다.

영화 <관상>의 수양대군 등장 장면

이 화재로 인해 2016년까지 세조의 외모는 그저 유추할 수밖에 없었다. 단지 그가 수양대군 시절 일으킨 잔혹했던 계유정난과 왕 즉위 이후 보여줬던 강력한 철권 통치를 통해 날카롭게 생겼을 것이라고 상상할 뿐이었다. 이 상상을 대표하는 게 지금도 밈으로 자주 사용되는 영화 <관상> 속 수양대군의 모습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에 세조의 어진을 모사한 적이 있는 김은호의 <세조 어진> 작품이 나왔다니 당연히 세간의 주목을 받을 만했다.

김은호, <순종 어진>, 1923, 유지 초본, 국립현대미술관

당시 경매에 나온 김은호의 <세조 어진>은 초본의 형태였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제작하기에 앞서 그리는 밑그림이라 보면 된다. 조선시대의 어진 제작은 우선 버드나무 숯으로 윤곽선을 그린 뒤 기름 종이를 대고 먹선으로 초본을 만든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완성하는 방식을 고수했다. 이 때의 초본을 유지초본(油紙草本)이라 한다. 대표적인 유지초본으로는 김은호가 그린 <순종 어진> 2점이 있다. 각기 국립현대미술관, 고려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매에 나온 <세조 어진>은 기름 종이에 그린 것은 아니었다. 제작 방식이 전통 방식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초상화가 곧 그 사람’이라는 회화관마저 바꿀 이유는 없었다. 즉, <세조 어진>의 세조 얼굴은 실제 외모에 근접했다고 봐도 되는 것이다. ‘드디어 세조를 보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경매장에 들어섰다. 이 경매의 메인 작품이 김은호 컬렉션이다 보니 별도 섹션을 마련하여 마치 특별전을 하듯 작품들을 모아놨다. 가장 안 쪽에 <세조 어진>이 위풍당당하게 걸려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화면 하단부터 서서히 시선을 올리며 그림을 바라봤다. 마치 왕을 대하듯이.

그랬다… 세조는 이렇게 생긴 것이었다.

경매장에 들어가 처음 이 작품을 봤을 때는 일단 생각보다 큰 사이즈에 흠칫 했고, 그 다음에는 황망했다. 생각보다 귀여웠다. 형~ 형~ 거리면서 나를 잘 따르는 후덕한 후배도 떠올랐다.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가 “진짜 이리의 상이다”라며 벌벌 떨게 했던 상상 속 세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물론 여기에서 상상의 발걸음을 과감하게 더 내딛는다면 이런 후덕한 얼굴로 잔혹한 권력을 휘둘렀다는 게 더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기록 속의 이미지와 실제 이미지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김은호, <매란방>, 1929, 국립현대미술관

<세조 어진> 초본 이외에 눈에 띄는 작품 중에는 <매란방>이 있었다. 그는 당시 중국 경극을 대표하는 남성 배우로서 영화 <패왕별희>에서 장국영이 맡았던 캐릭터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김은호는 1929년 중국 베이징을 다녀왔는데 이 때 매란방의 공연을 봤다고 전해진다. 김은호는 1925년부터 3년 간 일본에 유학을 다녀왔다. 이후 그의 화풍은 일본 신남화풍의 채색 기법이 두드러졌다. 일본 유학과 베이징을 다녀온 이후의 화풍을 잘 보여주는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이 두 작품은 내가 가장 욕심을 냈었다. 박물관에 돌아가서 무조건 구입해야 된다고 학예실에 얘기하고 관장님에게 보고했다. 단순 보고가 아니라 거의 조르다시피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다음 특별전을 위한 구입을 우선 해야 해서 결국 경매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근대회화 전시가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전시를 위해서 구입한다는 명분도 없었다. 관장님도 아쉬우셨는지 평소 같았으면 수락하지 않으면 그만인 일이었는데 “그래도 왕실 초상인데 국립고궁박물관이 갖고 있는 게 더 좋지 않겠냐”고 하셨다. 아쉬웠지만 또 이 말씀이 은근히 일리있게 느껴졌다.

결국 <세조 어진> 초상은 국립고궁박물관이, <매란방>은 국립현대미술관이 구입해갔다. 시간이 조금 지나 이들 기관에서 보존처리와 연구를 마치고 신소장품을 선보인다며 처음 대중에 공개했을 때 보러 갔다. 남의 박물관에서 다시 만났을 때 괜스레 자식을 남의 집에 두고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사왔어도 어차피 내 소유가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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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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