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 입문자를 위한 대화 / 최열, 홍지석(혜화1117, 2018)

석사과정에 다니고 있을 때만 해도 근대라는 시기는 관심밖이었다. 고미술만이 풍길 수 있는 고아함도 없고, 그렇다고 아주 현대적이지도 않은 과도기적인 어설픔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치 조선시대 사람이 댕기머리를 한 채 양복을 입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처럼 보였다. 그리고 암울한 시절이라는 시대적 배경도 관심을 갖지 않게 되는 데 한 몫을 했다.
지금은 근대미술이 괄목상대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많은 이들이 근대보다는 조선시대 후기 회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18, 19세기 작품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 탓도 크지만 무엇보다 ‘조선 문예의 르네상스’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18세기에 문예가 크게 번성하였고 그만큼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찬란했던 시절을 자신의 전공으로 삼고 싶어하는 마음도 18세기 연구 집중화에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러한 학문 트렌드는 조선시대와 근현대 연구의 분절을 가져왔다. 주요 학회마저 전근대와 근현대로 나뉘어져 서로간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연구자들이 누군지 서로 모를 정도이다. 미술사 연구를 함께 하고 있는 동학임에도 말이다. 마치 미술사와 미술비평을 구분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미술사와 미술비평은 언뜻 보기에 비슷해보이지만 서로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기에 다른 분야이다. 구분하기가 꽤 어렵긴 하지만 이렇게 보면 된다. 미술사는 역사적 맥락을 연구할 때 미술작품을 근거로 제시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 추한 것 모두 같은 중요도로 대한다. 유물로서 가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이냐, 아니냐가 연구의 1순위는 아니다.
반면에 미술비평은 프랑스 루이 15세 연간에 베르사이유궁에서 파리로 다시 돌아온 귀족들에게 미술비평가들이 집에 가져다 놓을 작품에 대해 조언을 해줬던 것처럼 감상자에게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선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아름다운 부분을 제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작품에 대한 평가, 판단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평가는 시간이 흐르면 후대 미술사 연구에 의해 높이 평가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지난 20세기에 근현대미술은 미술비평의 영역에서 자주 다루어져 왔다. 미술비평이 동시대 작품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미술사는 전근대의 고미술을 연구대상으로 삼아왔다. 근현대의 작품들은 역사적 맥락이 중요한 미술사가 다루기에 아직은 이른 시기였다.
21세기가 되고도 20여 년이 흐른 지금은 미술사에서 근대미술을 본격적으로 연구의 대상을 삼을 수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박물관, 미술관에서 근대미술을 주제로 한 전시도 자주 개최되고, 관련 강연도 성행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학위 논문의 주제로 근대미술을 선호하고 있다. 석사를 졸업한 후배들이 논문을 보내주곤 하는데 이제는 근대 이전의 주제를 발견하기가 더 어려운 일이 될 정도다.
지난 2016년에 근대회화를 주제로 특별전을 기획한 적이 있다. 전시기획을 위해 공부를 해보니 근대미술의 매력도 알게 되었다. 일단 고미술보다 작품이 많이 남아있어서 공부하는 맛이 났달까. 그만큼 치밀하게 검증하고 진위 감정도 병행해야 했지만 조선시대 초기의 미술사처럼 작품이 거의 없어 막연하지 않아 좋았다. 그리고 암울한 시대상 속에서 어떻게든 한국성을 찾아내려는 화가들의 고뇌도 느낄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엔 전통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현대의 세련됨도 얻지 못한 어설픔처럼 보이지만 근대화와 일제강점기를 동시에 겪었던 당시의 시대상을 비추어보면 치열한 몸부림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예전에 교보문고에 갔다가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었다. 근현대미술 분야에서 연구도 많이 하시고 다양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선생님 두 분의 대화록으로 꾸며진 이 책은 미술사를 공부할 때 갖춰야 할 자세, 관점, 공부 방법 등에 관해 많은 도움을 준다. 입문자를 위한다는 책의 제목답게 처음 미술사를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특히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