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도시, 한양 보물 100선⟫전 / 서울역사박물관

올해가 서울역사박물관 개관 20주년이라고 합니다. 서울을 연구하는 ‘서울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울은 다양한 층위의 역사와 의미를 갖고 있는 도시입니다. 역사 분야로는 이곳을 수도로 삼았던 백제와 조선시대가 대표적입니다. 근대화 과정의 대표적인 면모를 볼 수 있던 경성의 일제강점기도 있습니다. 그리고 도시계획학, 경제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들이 서울을 중심으로 헤쳐모일 수 있을 정도로 서울이라는 도시의 스펙트럼은 아주 넓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2년에 개관한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에서 발굴된, 혹은 서울을 주제로 삼은 문화유산을 바탕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아직도 땅을 파면 문화유산이 나오는 오래된 도시의 대표 박물관이었기에 개관 이후 10여 년 동안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만큼 국보, 보물급 지정문화재도 많고 서울을 주제로 한 특별전을 하기 좋은 박물관이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 컨셉의 변화
2010년대 들어와서는 어느 순간부터 서울역사박물관의 특별전들이 미술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점차 거리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문화재를 소개하는 특별전을 할 만큼 해서 그런지 컨셉을 도시학에 맞춘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어느 도시학자가 꿈 꾼 서울⟫, ⟪모래섬, 비행장, 빌딩숲 여의도⟫, ⟪청년 문화의 개척지, 신촌⟫과 같은 특별전들이 연이어 개최했거든요.
중간에 한 번씩 문화재 중심의 전시도 열리긴 했지만 서울역사박물관은 지금의 서울생활사박물관과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과 자매결연을 맺은 외국 도시의 전시도 함께 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조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동안 방문하질 않게 되더군요. 여의도전, 신촌전 같은 전시도 재밌고 의미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제 전공과 밀접한 주제가 아니다 보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명품들
지난 주 토요일(7월 23일)에 서양미술사 기초스터디를 마치고 오랜만에 서울역사박물관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원래 토요일 오전에 미술사 스터디를 시작한 이유가 끝나고 전시를 보러 다니고 싶었거든요. 이렇게 루틴화시켜놓으면 일주일에 전시 하나씩은 무조건 보겠다 싶어서 한 건데 잘 실천할지는 미지수입니다. ㅎㅎ
암튼 스터디를 마치고 어떤 전시를 보러 갈까 고민하며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를 보니 ⟪명품도시, 한양 보물 100선⟫ 특별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회화, 서예, 전적, 도자, 공예 등 다양한 장르의 지정문화재들을 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마치 국립중앙박물관에 비견되던 서울역사박물관의 옛 위용이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대동여지도>를 모두 펼쳐서 특별 제작한 진열대는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합니다. 이를 비롯하여 보물 15건, 유형문화재 25건 등 총 100여 점을 엄선한 전시입니다.

회화
회화 섹션에서는 화려한 궁중회화, 핍진한 초상화, 한양 진경산수화, 문인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특히 궁중에서 사용한 <모란도병풍>과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책가도>는 명료한 채색감각과 장식성 높은 디자인을 볼 수 있어 치밀한 필치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보여줍니다.

문신초상인 <윤익렬 초상>은 세상에서 가장 사실적인 초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조선시대 초상화의 특장을 고루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대강 봐도 관복과 쌍학흉배의 사실성 높은 치밀함, 바닥에 깔려있는 채전(彩氈)의 세부 표현은 충분히 감탄을 불러일으키죠. 그러나 조선시대 초상화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얼굴의 육리문(肉理文)에 있습니다. 일종의 입체감을 드러내기 위한 음영법 중 하나입니다. 조선후기에 서양화법이 유입되면서 이에 반응하며 발생한 우리나라 초상화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서양회화에서 명암법은 화가가 조명의 위치를 상정해놓고 여기에 맞춰 그림자를 그라데이션으로 칠해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육리문은 조명도 염두에 두지만 보다 세밀함에 초점을 맞춰서 피부결에 따라 가는 붓으로 그어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굴을 보면 주름진 곳마다 미세하게 그림자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죠. 도판에서 인물의 오른쪽 뺨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잔주름과 그에 따른 그림자들이 모여 사진에 가까울 정도로 피붓결을 실감나게 그렸습니다. 서양 화법보다 더 사실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화가들은 초상화를 그릴 때 “터럭 한 올이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을 준수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그 사람의 정신까지 담아낼 수 있다고 본 겁니다.

<노안당 편액>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입니다. 추사체로 쓴 글자들을 모아서(집자) 흥선대원군이 거주한 운현궁의 사랑채 노안당에 걸어뒀던 현판입니다. 현판이었던 유물의 본래 성격에 걸맞게 전시에서도 특별히 신경을 써서 위에 진열을 해놓았네요. 현판은 올려다보는 것을 감안하고 걸어두는 것이니 제대로 된 위치에서 감상할 수 있게 신경을 쓴 모양입니다. 김정희는 이하응의 스승인데 화면 왼쪽에 ‘석파 선생’이라고 쓴 것은 제자여도 이하응은 왕족이니 예우를 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희가 약 9년 간의 유배를 마치고 귀성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하응이 오매불망 기다렸다가 묵란화 그리는 법을 사사해달라고 청을 하며 인연이 시작되었죠. 이후 김정희가 “압록강 동쪽(즉, 조선)에서 이보다 뛰어난 작품이 없다”고 극찬을 할 정도로 이하응의 묵란화(석파란)는 일가를 이루게 됩니다.


도자기, 공예
도자기, 공예 섹션을 가면 서울시가 소장하고 있는 명품들을 한 곳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조선의 수도였던 곳답게 백자가 많네요. 그 안에서도 백자 원형 항아리부터 병, 각이 진 항아리 등 다양한 기형을 볼 수 있습니다. 문양기법도 상감, 청화, 철화, 동화 등 다채롭습니다. 특히 큰 항아리들을 보실 때는 가운데 부분에 접합 부위를 한 번 찾아보세요. 조선 백자는 재질 성격 상, 큰 항아리를 제작할 때 바닥부터 구연부까지 한 번에 제작하기 어려웠습니다. 흙이 무너졌거든요. 그래서 아랫 부분, 윗 부분을 따로 제작한 다음에 접합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독 비뚤비뚤한 기형이 많죠. 이러한 형태를 두고 많은 학자들은 자연미, 겸손의 미덕이 있다고 높은 평가를 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소위 선이 딱 떨어지도록 균형있게 제작한 사례가 없었다면 동의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왕실 도자기 등을 보면 정제된 형태에 좌우대칭이 맞는 기형도 많기 때문에 이를 만들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때로는 이렇게 비뚤거리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다며 사용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의 집착을 부리지 않고 어느 선에서 멈출 줄 아는 자제력이 있었던 것이죠.

도자사 연구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는 도대체 이런 도자기에 무엇을 담았냐는 점입니다. 유약이 발라져 있어 내용물이 스며들지도 않으니 성분 분석에 의한 추적도 어렵습니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문헌자료입니다. <백자청화운룡문호>처럼 용이 그려진 것은 왕실용 항아리인데 이런 항아리를 두고 사료에 ‘용준(龍樽)’이라고 쓴 것을 보아 술항아리(‘樽’자가 술통 준이거든요)나 행사 때 쓰는 꽃병으로 썼을 것으로 추정하곤 합니다.

도자기와 함께 전시된 나전함도 볼 수 있습니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을 상징적으로 장식한 <나전모란문함>입니다. 모란은 삼국시대에 당 태종이 신라에 모란 그림과 모란 씨를 선물하면서 전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향기가 없는 꽃이라 시각적 장식성에 매우 적합한 소재이죠. 더구나 모란을 애호하기 시작한 곳이 왕실이다 보니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모란에 ‘부귀’라는 상징성이 붙게 되었죠. 그래서 사람들의 욕구가 가장 많이 발현된 장르인 공예품, 민화에 모란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은 겁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나전은 마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세밀함을 목표로 아주 잘게 자른 나전으로 문양을 내었다면, 조선시대 나전은 이 작품처럼 점차 큼직큼직하게 잘라서 문양을 만들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제작기술의 우수성만 놓고 보면 고려시대 나전이 단연 앞서지만, 작품의 가치는 기술력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기에 단순 비교하긴 어렵습니다. 취향의 영역이기도 하겠구요.

저의 취향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나전으로 나무 함 전체를 모두 덕지덕지 발라버린 <나전희문옷상자>(19세기, 호림박물관 소장)를 가장 좋아합니다. 호림박물관에서 나전칠기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이런 양식의 작품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베르사이유 궁에 슬그머니 갖다 놔도 어울리겠네’라고 생각할 정도로 화려함이 강렬하게 다가왔죠.
명품전의 의의
이처럼 각 분야별 좋은 작품들을 엄선한 전시는 한 번에 여러 전시를 본 것 같을 정도로 가성비가 무척 좋네요. 이런 명품전은 큐레이터의 기획이 들어가지 않은 전시라며 낮춰보는 큐레이터들도 있지만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첫번째는 관람객 입장에서 최대한 좋은 작품을 볼 수 있도록 하는게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기 때문이고, 두번째는 관람객은 작품을 보러 올 때가 더 많지 큐레이터의 현란한 기획력은 오히려 잘 모른채 넘어갈 때가 많다는 점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좋은 작품을 선별하는 행위 자체가 큐레이팅이기 때문에 작품보다 먼저 앞서려는 기획은 좀 자제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주에 소개해드린 일본 국보전도 기대가 되고, 이번 서울역사박물관 전시도 조선시대 미술 이모저모를 살필 수 있어 무척 재밌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는 지난 5월부터 시작했고 8월 7일까지 합니다. 이제 일주일 남았네요. 진작 소개해드리면 좋았을텐데 제가 몰랐습니다. ㅎㅎ 앞으로는 가능하면 좋은 전시 놓치는 일 없도록 저도 좀 더 세심하게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