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렘브란트의 자화상

인품의 성장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돌아보는 일이다. 나에 대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에 ‘절대적인 객관성’이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나를 돌아볼 줄 알아야 남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자신을 돌아볼 줄 알고 그래서 겸손한 인품의 사람들을 간혹 만나게 된다. 이런 사람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표정이 온화하고 왠지 모르게 사람이 맑아보인다는 점이다. 자신을 직시하여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기에 꾸밈이 적고 인위적인 표정으로 사람을 속이려 하지 않는다. 렘브란트의 <63세 때의 자화상>은 이렇게 자신에게 집중할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는 서양미술사에서 유독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다. 현재 약 80점 정도 전해지고 있다. 렘브란트가 활동하던 17세기 네덜란드는 스페인으로부터 갓 독립하여 경제적으로 한창 성장세에 놓여 있었다. 대외 무역을 통해 많은 부를 쌓은 부르주아 계층이 미술계의 주문자로 등장했고 이들의 취향에 맞는 미술이 인기가 높았다. 당시 가장 인기가 높았던 주제는 역사화, 그룹 초상화, 정물화였다.
특히 화가들은 규모가 큰 역사화나 그룹 초상화를 잘 그려야 명성을 얻을 수 있었으므로 인물표현 능력이 중요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이를 위한 연습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덕분에 20대 젊은 시절의 자화상부터 <63세 때의 자화상>처럼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모습까지 많은 수의 자화상을 남길 수 있었다. 자신의 모습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일생에 걸쳐서 그렸기 때문에 그의 자화상은 화풍의 변화를 잘 보여준다.

이탈리아의 카라바지오를 존경한 렘브란트는 그의 영향을 받아 작품의 주제를 강조하는 대각선의 조명효과를 잘 구사했다. 마치 연극무대에서 주인공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쏴주는 것처럼 화가가 강조하고픈 부분을 사선의 조명으로 비춰주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 조명을 중심으로 빛이 안들어오는 곳은 아주 어둡게 처리하여 전반적으로 명암의 대비가 강렬하다. 바로크 미술의 대표적인 특징인 이같은 방식은 화면에 극적인 효과를 갖게 해준다.
<34세 때의 자화상>도 화면 왼쪽 상단에서 사선으로 내려오는 빛에 의해 렘브란트의 모습이 드러나는 방식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외의 부분은 아주 어두워서 작품의 권위가 절로 살아난다. 작품에 권위를 부여하는 요소는 조명뿐만 아니라 그의 의복, 표정 그리고 자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라파엘로와 티치아노의 그림을 참고하여 그린 이 작품은 의복도 당대가 아닌 르네상스 시대(16세기 전반)의 것이다.
렘브란트가 르네상스 양식의 의복을 입은 것은 성공한 화가 이미지뿐만 아니라 인문학적인 교양도 갖추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던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에 그는 실제로 화가로서 명성이 매우 높았고 막대한 부도 쌓은 상태였다. 한마디로 모든 것에 자신만만했던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63세 때의 자화상>은 눈빛이 한결 깊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한창 패기있을 30대의 모습과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노년의 모습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려우나 세상을 보는 시각이 온화하고, 마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매우 깊은 눈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복잡한 세상사에 많은 것을 내려놓은 심정을 대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자세는 비굴하지 않고 가지런함을 유지하고 있어 부와 명예 모두 그를 떠난지 오래되었음에도 높은 자존감을 보여준다.

손의 모습에서도 두 작품의 차이를 알 수 있다. <34세 때의 자화상>은 세상과 부딪쳐도 나는 충분히 싸워 이길 수 있다는 듯 당당하게 팔과 손을 내밀고 있지만, <63세 때의 자화상>은 자신의 품 안을 향하여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있다. 밖이 아니라 나를 향해 있고 그마저 어둠에 가려지기 직전이다. 서양미술사에서 손은 화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상징이었다. 화가 자신이 “나는 화가다”를 말하기 위해 붓을 든 모습으로 자주 묘사되었다. 그러나 <63세 때의 자화상>처럼 렘브란트의 내면을 향한 자화상이 등장한 이후 자화상의 의미는 직업적 정체성 표현에서 자기 성찰의 과정 중 하나로 바뀌게 되었다. 렘브란트 회화가 높이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다.
렘브란트의 회화는 크게 전기와 후기로 구분된다. 전기의 회화는 바로크적인 활기가 넘친다. 인물의 행동은 과장되고 스포트라이트는 강렬하며 밝음과 어둠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그 시절 렘브란트의 기세가 얼마나 강렬했고 화가로서 성공적인 일상을 보냈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반면 미술사의 기념비적인 작품 <야간 순찰대>를 공개했다가 세상의 온갖 비난을 받으며 몰락한 것을 기점으로 그의 후반기 작품은 매우 정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로 변화하였다. 강렬했던 명암 표현도 <63세 때의 자화상>에서 볼 수 있듯이 마치 수면등을 켜놓은 것처럼 은은해졌다. 바로크 미술의 종말을 암시하듯 그의 회화에서 바로크적인 요소들이 소멸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실제 당시 네덜란드의 바로크 미술은 렘브란트가 세상을 떠나는 것을 시작으로 그 자리를 고전주의에 넘겨주게 되었다.
<63세 때의 자화상>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에서 볼 수 있다. 화가별 대표 작품이 전시에 나오지 않아 꽤 허망한 전시가 되긴 했지만 이 작품만큼은 렘브란트 회화의 정수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은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여 나에게 존재의 의미를 생각하게끔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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