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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의 참 맛을 알게 되듯이

이장훈
이장훈
- 6분 걸림 -

지금까지 평양냉면을 먹은 횟수는 10번이 채 되지 않는다. 대학박물관에 있을 때 송년회 할 겸 관장님부터 전직원이 역삼에 있던 LG아트센터에 뮤지컬을 보러 갔는데 그 전에 식사삼아 평양면옥에 가서 먹은 게 처음이었다. 이도 저도 아닌 듯한 맛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맛 표현이 명쾌한 함흥냉면이 더 맛있어서 평양냉면은 어르신들이 추억삼아 먹는 음식 정도로 여겨왔다.

호림박물관에 있을 때는 팀장님이 평양냉면을 무척 좋아하는 분이었다. 그분을 따라 세 번 정도 압구정에 있는 강남면옥에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팀장님은 내가 썩 맛있어하는 눈치가 아니었는지 이런 말을 건넸다.

“지금은 무슨 맛인지 모르겠지만 딱 5번만 먹어보면 알게 될 거야.”

시간이 흘러 재작년에 미팅이 있어 나왔다가 오랜만에 평양면옥을 들렀다. 이 때도 내가 먹고 싶어 간 것은 아니었고 함께 갔던 본부장님이 먹자 해서 간 것이었다. 먹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싫은 것도 아니어서 따라갔는데 이번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지난 10여 년 동안 드문드문 먹었던 것과 달리 너무 맛있었다. 접시 만두에 면을 추가해서 먹을 정도였다. 이 때가 평양냉면을 5번째 먹은 날이었다.

이후 평양냉면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 ‘슴슴한 맛’이라는 게 무슨 맛인지 이제는 알 것 같다. 이번 여름에는 평양냉면을 먹기 위해 여러 차례 외출을 단행할 정도에 이르렀다.

평양면옥의 평양냉면과 접시만두

서양미술에 익숙한 상태에서 조선시대의 미술을 보면 단아한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어느 부분에서 감탄을 하고 감동을 받아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미술사를 전공했던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완벽하게 들어맞는 비례, 좌우대칭, 명료한 채색감각을 지닌 서양의 고전미술이나 스케일과 화려함에서 일단 눈길을 끄는 중국과 일본미술에 비해 미적 명쾌함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현 고유섭 선생은 우리나라 미술에 ‘구수함’과 ‘고수함’이 모두 담겨있다고 말했다. 이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구수’하다는 것은 순박순후한 데서 오는 큰 맛이요, 예리하고 모나고 찬 이러한 데서는 오지 않는 맛이다. 그것은 깊이에 있어 입체적으로 쌓여 있는 맛이며, 속도에 있어 빠른 것과 반대되는 완만한 데서 오는 맛이다. 따라서 얄상궂고 잔박하고 경망하고 꾀부리는 점은 없다. … 이것이 미술적 승화를 못얻었을 때, 그것은 텁텁하고 무디고 어리석고 지더리고 경계 흐리고 …, 심하면 체면 없고 뱃심 검은 꼴이 된다.
이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고수’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적은 것으로의 응결된 감정이니, 예컨대 조선백자의 색조 같은 데서 그 구체적인 일반 예를 볼 수 있다. 외면적으론 일견 단순한 하얀 한 가지 색에 불과하지만, 여러가지 요소가 안으로 안으로 응집 동결된 특색이니, 저 ‘구수’한 맛이란 것이 내외없이 모 없는 맛을 이루고 있는 것임에 대하여, 이것은 안으로 응집된 맛이다.

고유섭, 진홍석 엮음, 『구수한 큰맛』(다할미디어, 2005), p. 19 재인용.

어떤 문화의 특징에 대해 알아갈 때 이토록 곰곰이 곱씹어야 겨우 이해되는 게 또 있을까 싶다. 이 설명이 겨우 이해된다면 그 다음에는 실제 작품을 대하며 느껴보는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전공 공부로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쉽지 않은 일이다.

고유섭 선생은 우리나라 미술이 다른 나라 미술에 비해 일반인들의 이해가 매우 적다는 점이 가장 불행하다고 지적도 함께 거론하였다. 이런 불행함이 야기된 첫번째 이유로 미술 관련자들의 몰이해, 무식에 따른 작품의 훼손을 들었다. 그리고 당시 문필가들의 미술에 대한 저조한 관심 때문에 일반인들이 미술을 이해하고 향유할 기회가 적어 미의식 향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우리나라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관심과 지식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미술, 그중에서도 특히 조선시대 회화는 알면 알수록 느낄 수 있는 매력이 커지는 장르다. 마치 처음에는 자극적인 함흥냉면을 선호하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혹은 먹어볼수록 그 참 맛을 알게 되는 평양냉면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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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History

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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