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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 식물에 뜻을 의탁하다. (1)

이장훈
이장훈
- 7분 걸림 -

사군자의 기원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합쳐 흔히 사군자화라고 부른다. 동아시아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긴 군자의 의미를 매 ··· 죽에 적용하여 문예의 소재로 사용하였다. 사군자는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덕망이 높은 4명의 선비에서 비롯된 용어다. 매 ··· 죽이 군자를 상징하는 식물로 대우받게 된 이유에는 이것들이 지닌 생태적 특성도 한 몫하였다.

매화는 매서운 겨울 추위 속에서 꽃을 품고 있다가 새 봄이 오기 직전에 꽃을 피운다. 난초는 낮은 땅에서 비와 이슬을 받아내지만 아주 고운 꽃을 피우고 향을 은은하게 멀리까지 보낸다. 국화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찾아올 무렵 조용히 서리를 맞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꽃을 피운다. 대나무는 곧게 자라 휘어지기는 해도 쉽게 부러지지 않으며 추운 겨울에도 변치 않고 푸름을 유지한다. 모두 고결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교적 군자에 걸맞는 모습을 갖추고 있다.

··· 죽이 사군자로 묶인 것은 어떤 계기에 의해 한 번에 정해진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사대부들에게 애호되다가 자연스럽게 상징화되었다. 따라서 매 ··· 죽이 같은 비중으로 애호되지 않고 때에 따라서 몇 개가 같이 묶이기도, 혹은 각기 애호되기도 하였다. 혹은 소나무나 연꽃, 돌도 군자의 덕성을 닮은 식물로 여기기도 하였다. 이렇게 사군자의 상징물은 처음부터 매 ··· 죽으로 통일된 건 아니었다. 문학이나 미술을 통해 군자의 덕성을 닮았다고 여기는 식물을 개별적으로 혹은 몇 개씩 묶어 애호해오다가 명나라에 이르러 매 ··· 죽을 사군자로 지칭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 매 ··· 죽을 함께 다뤄 시와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부터였다. 이전 고려시대에는 추위를 견디며 뜻을 유지하는 군자를 닮았다고 본 소나무, 대나무, 매화의 세한삼우가 주로 애호되었다. 고려의 회화가 워낙 전해지는 것이 적어 그 면모를 자세하게 살펴볼 수는 없지만 <태조 왕건 현릉>의 벽화, 해애라는 승려가 제시를 쓴 <세한삼우도>를 보면 사군자보다 세한삼우가 더 애호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군자의 덕성을 닮은 식물들을 문예에 활용한 전통이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사군자’라는 명칭 자체는 근대에 이르러 처음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매죽’, ‘난죽’, ‘매난국죽’으로 불렀을 뿐 ‘사군자’로 부르지는 않았다. 사군자라는 단어가 처음 기록으로 등장한 것은 1922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시작된 관전인 조선미술전람회의 규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규정에서는 “주로 먹을 사용한 간단한 그림”이라는 의미로 사군자를 지칭하였다.

고려시대의 사군자

<태조 왕건 현릉>의 고분벽화, 943, 황해북도 개풍군
작자미상, 해애 제시, <세한삼우도>, 고려 후기, 131.6×98.8, 비단에 수묵, 일본 묘만지

사군자화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그려져왔다. 사군자라고 하면 서예의 필선으로 마치 글씨를 쓰듯 그린 이미지가 우선 떠오를 것이다. 이는 사군자를 그리는 여러 방식 중에 하나일 뿐이다. 혹은 위의 <태조 왕건 현릉>의 벽화나 <세한삼우도>처럼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리듯이 윤곽선으로 형태를 나타내고 그 안을 칠하는 방식도 있다. 이를 구륵법(鉤勒法)이라 하며 대개 화면을 장식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극도의 화려함을 자랑하는 고려불화에서도 확인된다.

김우문, <수월관음도>, 1310, 419.5×254.2, 경신사, 일본

고려불화를 대표하는 <수월관음도>는 여러 면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1310년에 그린 작품으로 1319년 왜구의 침입 때 약탈되어 일본에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대개 종교화의 제작 목적상 화기에는 작품을 주문한 발원자의 이름만 기록되고 화가의 이름은 생략되곤 하는데 이 작품은 김우문을 비롯한 총 4인의 화가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종교를 넘어 하나의 예술품으로도 인정받았다는 증거다. 또한 세로의 길이가 4미터가 넘는 현존 고려불화 중 가장 크기가 큰 대작이며 여러 장의 비단을 합쳐 그린 게 아니라 한 폭의 비단에 직접 그렸다. 왕실 발원작품답게 제작비가 상당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수월관음도>를 가까이에서 보고, 다시 멀리 떨어져서 보면 치밀한 세부묘사와 전반적인 우아함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점에 감탄하게 된다. 이 지점에서 예술의 경지가 무엇인지 비로소 느낄 수 있게 된다. 세부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이 작품에서도 당시 사군자화를 그리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화면 속 관음보살의 오른 팔 옆에는 다소 어둡게 처리된 두 그루의 대나무가 그려져 있다. 명료한 윤곽선으로 대나무의 형태를 그리고 그 안을 채색했는데 앞서 본 <태조 왕건 현릉>의 벽화와 <세한삼우도>와 동일한 기법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사군자화는 처음에는 관조의 대상으로써 세밀하게 묘사하는 구륵법으로 주로 그려졌다. 그리고 성리학이 발달함으로써 사물에 특별한 의미를 담아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것이 유행한 중국 북송대에 이르러 시에서는 영물시(詠物詩), 그림에서는 문인화(文人畵)가 발달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사군자를 소재로 다양한 화법이 마련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나라와 일본까지 전해져서 각 국의 사군자화가 다채롭게 전개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다.

‘사군자, 식물에 뜻을 의탁하다. (2)’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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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