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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망설임을 표현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이장훈
이장훈
- 5분 걸림 -
Edward Hopper, <Stairway>, 1949, Oil on wood, 40.6 × 30.2,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를 보고 왔다. 미술관에서 세심하게 준비해놓은 동선에 따라 작품들을 감상했다. 여느 전시 관람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우선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유명한 작품이 나왔는지를 살피며 전시실 곳곳을 살폈다. 유독 한 작품이 눈에 걸려 들어왔다. 작품 사이즈도 작고, 알려진 작품도 아니어서 금세 지나쳤던 작품이었다.

전시가 좋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요소는 여러가지이지만 이번처럼 왠지 모르게 눈에 남아 그 작품을 다시 보러 가는 일도 포함된다. 어두운 빛의 초록색을 작품 전반에 활용하여 그렇지 않아도 우울한 분위기의 에드워드 호퍼 작품 중에서도 유독 음산한 기운을 보이는 <계단(Stairway)>이라는 작품이었다.

<계단>도 에드워드 호퍼의 다른 작품들처럼 작품의 시점이 감상자의 시선과 일치한다. 2층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은 계단을 내려올 때 보이는 집 안 풍경이 펼쳐져 있다. 황토빛 벽과 사용한지 오래되어 보이는 카펫이 어우러지며 전반적으로 집의 안락함보다는 곧 떠나줄 것을 종용하는, 불화로 가득 찬 집의 느낌이 든다.

우중충한 집 내부와 달리 현관문은 새로 페인트칠을 한듯 하얗고 깨끗하다. 가족에게는 전혀 살갑지 않고 근엄하면서 외부의 시선에는 꽤나 신경을 쓰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솜씨처럼 보인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되는 곳은 이 현관문 밖으로 보이는 정원 풍경이다. 사실 풍경이라고 말하기 어색할 정도로 사람 키보다 큰 넝쿨담장에 가로 막혀있어 뻗어 나가려는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담장 밑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답답함을 더해준다.

소실점을 향한 선원근법이 르네상스 시대에 무한한 3차원의 공간 마련을 위해 개발된 화법임을 상기하면 에드워드 호퍼의 이같은 방식은 전통과의 결별 혹은 새로운 변용을 선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덕분에 고작 40cm 내외의 작은 그림인데도 불구하고 감상자의 시선을 끌어당겼다가 이내 막아버릴 줄 아는 화가의 능숙한 솜씨를 잘 보여준다. 밖으로 나가도 괜찮다며 문은 열려 있지만 바로 앞의 담장에 의해 멈칫거리게 된다.

새로운 선택이나 결정의 순간에 대처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방식대로 결정을 내릴 뿐이다. 중대한 선택을 해야 될 때면 가능한 결정의 순간을 뒤로 늦추는 편이다. 특히 이직, 진학과 같은 내 삶의 경로에 관해서는 고민의 시간을 오래 가진다. 머리를 싸매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는 것은 아니다. 고민의 화두만 머릿속 한 켠에 남겨둔 채 일상을 보낸다. 때와 장소에 따라 고민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늦은 밤에 홀로 방 안에서, 출퇴근길에, 술자리에서 등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 이 방식을 선호한다. 발을 잘못 내딛으면 돌이키기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쉽게 결정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20년 전쯤 SBS 예능 <야심만만>이라는 프로를 즐겨봤다. 한 번은 배우 허준호씨가 출연했다. MC였던 강호동씨가 40대가 되니 어떤가라는 질문을 건네자 그는 식사할 때 밥알을 자주 흘리게 되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부연설명하길, 그 정도로 고민과 선택할 사안이 많아졌다는 의미였다. 꽤 인상적이었던 장면으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나도 40대가 되면 그렇게 될까.

시간이 흘러 40대가 된 지금 돌이켜보니 당시 허준호씨 같은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는다. 다만 선택해야 할 사안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실감하고 있다. 그만큼 망설임의 순간도 많아지고 있다. 앞으로 내딛을까, 그냥 머무를까. 머무르기에는 이 작품 속 집안처럼 딱히 좋을 일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나가자니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 작품은 나에게 선택을 묻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정을 강요하고 있지는 않으나 문을 열어둠으로써 선택의 순간이라는 점만 보여주고 결정을 내리길 기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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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History

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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