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학과 유럽중심주의 / 강철구, 안병직 편(용의 숲, 2011)

미술사 강의를 할 때마다 항상 말하기 껄끄러운 부분이 있다. 동양과 서양, 그리스 미술이 대표적이다. 이를 말할 때 나도 모르게 한 번 입을 다물고 한 템포 쉬었다가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다. 그 이유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단어가 무책임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미술사를 지역으로 구분할 때 한국미술사, 동양미술사, 서양미술사라고 한다. 동양미술사는 한국 외의 아시아 국가들, 특히 중국과 일본, 인도미술사를 통칭할 때 사용한다. 서양미술사는 유럽의 미술사(현대에 미국미술도 추가)를 의미한다.
최근 직장인 법정교육의 미술사 강의 영상을 제공하기로 계약을 맺어서 얼마 전에 원고를 모두 써서 보냈다. 주제는 크게 동양과 서양미술사 비교다. 처음 목차를 만들면서 꽤 고심을 했다. 동아시아의 고전 수묵화와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 회화를 비교하는 게 목표라서 당연히 ‘동아시아의 회화와 유럽의 회화 비교’라고 썼지만 결국 수정했다. 아무래도 사람들에겐 ‘동양화와 서양화’가 더 익숙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중성도 고려해야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썼지만 마음 한 켠에는 동양화면 인도회화, 동남아시아 회화 다 들어가야 하고, 서양화면 유럽 외에 미국미술도 들어가야 하는데 적확하지 않은 용어를 사용한다는 게 못내 깨름칙했다.
내 개인 논문을 쓰거나, 나의 전공을 말할 때는 일본과 중국 청나라 회화의 교류를 연구했으므로 ‘동아시아 회화교류사’라고 말하지만 실체가 불분명한 용어인 동양과 서양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게 많이 난감하다. 근대 일본에서는 동양화, 서양화, 그리고 자신들의 미술은 별도로 ‘일본화'라고 구분했다. 이 구분법이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미술대학에서 동양화과, 서양화과라는 명칭을 볼 때마다 언제쯤 바뀌려나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스 미술에 대해 강의할 때는 서양미술사 전체 흐름 위에서 설명해야 하므로 그리스 미술이 서양미술의 고전이 된 이유, 이후 유럽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 그리스 미술이 갖고 있는 여러 특징 중에 이후 유럽 미술과 관련있는 부분 위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실제 유럽인들은 자기들 문화의 원천이 그리스에 있다고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서양미술사의 대표적인 고전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에는 그리스 미술 챕터의 제목이 ‘위대한 각성'이라고 되어 있다. ‘각성'은 깨우치지 못하고 있던 것을 드디어 깨닫게 되었을 때 쓰는 단어다. 마치 앞 시대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문명이라고 보기 힘든 시간을 보낸 후에 그리스인들에 의해 문명이 제대로 시작되었다는 식의 인식이 담겨있는 것이다. 거기에 호들갑스럽게 ‘위대한'까지 붙여줬으니 그에게 그리스 미술이 얼마나 위대하게 여겨졌을지 쉽게 짐작이 된다. ‘크… 증말 위대하다 위대해'라는 냉소가 절로 나온다. 사실 그리스 미술은 이집트 미술에 많은 부분에서 빚을 졌다. 그런데 이런 영향 관계를 축소시켰다는 것을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다.
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하며 문화는 우열의 관계로 보면 안된다고 배워왔다. 특징을 찾은 후 다양성의 관점으로 보는 유연한 사고가 중요하다. 마치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당연한 자연 법칙이듯 문화 역시 주도했던 지역과 그에 영향을 받은 지역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열등한 것도 아니오, 거꾸로 우리가 영향을 줬다고 해서 우월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일이다. 그런데 오랜 세월동안 유럽인들은 그리스부터 문명이 ‘제대로' 시작한 이래 현재 지구상의 문화 패권을 유럽이 쥐게 되었다는 자부심 하에서 많은 학문들이 연구되어 왔다.
『서양사학과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사를 세계사의 중심으로 보는 편협한 인식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간행된 책이다. 사학과 교수들의 관련 논문을 모아 편집한 책으로 그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역사를 인식함으로써 생긴 오류와 이를 수정하려는 이론들을 담고 있다. 논문집이지만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미술사 논문들을 보면 가끔 ‘갈라파고스 제도'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역사의 한 분과면서 일반 사학계와 동떨어진 채 이미 사학계에서 정리가 되어 죽은 개념과 용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런 오류를 범해 비웃음살까 두려워 용어 하나하나 검증하며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이 책 역시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읽었는데 사학의 세계관, 지역 인식에 많은 공부가 되었다.
p. 191
유럽중심주의는 모든 전문 연구에 스며들어 있지만 그것들을 통해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유럽에서 역사학이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 자리잡기 이전에 이미 유럽 중심의 역사상이 형성을 완료했기 때문이다. 앞서 보았듯이 19세기 유럽은 자신만이 진정한 변화를 경험했다고 자부하고 그 변화를 과거의 흐름 속에서 추적하는 일을 역사학의 임무로 부과했다. 그 역사라는 것은 새로이 등장한 국민국가에 정체성과 정당성을 부과하기 위한 민족사 서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문명사적 틀을 갖추고 있었다. 우선 그것은 자생적인 변화 능력을 유럽에만 부여하여 ‘역사'를 독점했다. 유럽의 주도 아래 오직 유럽의 자극을 통해서만 역사는 단선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시간도 유럽인의 독점물이었다. 유럽만의 역사는 유럽 중심의 세계사로 확대되어 유럽의 내적 발전에 부합하는 거시적인 시간대를 설정했다. 세계사는 고대-중세-근대(-현대)로 3분되어 고대-중세의 단절은 무시된 채 유럽은 ‘지중해 고대'의 적자가 되고 중세 이래의 변화와 발전은 오직 내적 역동성으로만 설명되었다. ‘서구의 대두'를 설명하는 가운데 서구의 역사학은 그 요인의 형성 과정을 훨씬 이전의 시대에까지 끌어올려 추적했고, 급기야 인류사 전체를 하나의 설명틀로서 관통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