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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찬란한 창덕궁의 벽화들

이장훈
이장훈
- 8분 걸림 -

미술작품의 양식 변화를 기준으로 본다면 창덕궁 희정당, 대조전, 경훈각에 있는 벽화 6점은 조선왕실 회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벽화들이 제작된 해는 1920년으로 이미 일제에 강제 병합을 당한 뒤이지만 조선시대 미술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단순히 전통을 계승한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마지막 불꽃을 피우듯 지금껏 보지 못했던 화려한 궁중회화의 면모를 잘 보여준다.

창덕궁 세 전각 내 벽화들은 대한제국의 순종 황제가 제작을 의뢰하여 제작되었다. 1917년에 원인 모를 화재로 창덕궁의 전각들이 사라져 재건사업을 진행했으며 여기에는 소실된 궁중의 많은 서화를 다시 제작하는 일도 포함돼 있었다. 벽화의 주제는 순종의 뜻에 따라 조선미술의 극치가 될 만한 것으로 주어졌다. 이 사업을 맡았던 김규진, 김응원은 각각 당시 화단의 대표적인 교육기관이었던 서화연구회와 서화미술회(경성 서화미술원의 후신)의 대표였다. 서화연구회를 개인 사숙처럼 운영했던 김규진은 홀로 희정당을 맡았고, 서화미술회에서는 김규진과 김응원의 제자격이었던 김은호, 오일영, 이용우, 이상범, 노수현 등 5명이 제작을 맡았다.

창덕궁의 세 전각에 조성된 총 6점의 벽화와 이를 그린 작가는 다음과 같다.

희정당

  • 김규진, <총석정 절경도>, 1920, 195.5x882.5, 비단에 채색, 창덕궁 희정당 동쪽 벽
  • 김규진, <금강산 만물초 승경도>, 1920, 195.5x882.9, 비단에 채색, 창덕궁 희정당 서쪽 벽

대조전

  • 김은호, <백학도>, 1920, 비단에 채색, 214.0×578.0, 창덕궁 대조전 서쪽 벽
  • 오일영, 이용우, <봉황도>, 1920, 비단에 채색, 214.0×578.0, 창덕궁 대조전 동쪽 벽

경훈각

  • 이상범, <삼선관파도>, 1920, 비단에 채색, 194.9×524.5, 창덕궁 경훈각 서쪽 벽
  • 노수현, <조일선관도>, 1920, 비단에 채색, 194.9×524.5, 창덕궁 경훈각 동쪽 벽

이 작품들은 벽화이지만 벽에다 직접 그린 것은 아니고 비단에 그린 후에 부착한 형식이다. 원본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작품 크기에서 볼 수 있듯 우리나라 회화에서 보기 드문 대작들이다. 병풍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큰 사이즈의 회화작품은 또 뭐가 있는지 선뜻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화풍은 전형적인 궁중회화 양식으로 수묵 위주의 문인화와 달리 진한 채색을 하였고 묘사는 치밀하다.

김규진, <총석정 절경도>, 1920, 195.5x882.5, 비단에 채색, 창덕궁 희정당 동쪽 벽, 국립고궁박물관
김규진, <금강산 만물초 승경도>, 1920, 195.5x882.9, 비단에 채색, 창덕궁 희정당 서쪽 벽, 국립고궁박물관

김규진은 수묵으로 그린 묵죽화로 특히 유명한 인물이다. 현재 다른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그의 작품 대부분이 묵죽화다. 그런데 <총석정 절경도>와 <금강산 만물초 승경도>를 보면 그가 채색화에도 능통하고 큰 사이즈의 실경산수도 충분히 장악할 수 있는 실력자였음을 알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조선후기 겸재 정선과 그의 일파에 의해 유행했던 진경산수화로 애호받았던 금강산을 주제로 했다. 민족정기가 서린 산으로 유명하여 ‘조선미술의 극치’를 그려 달라는 왕실의 주문에 부합하는 주제였다. 더불어 경부선, 경원선을 통한 관광지로 금강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던 때라 이 역시 주제 선택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2017년에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존처리를 마친 기념으로 《창덕궁 희정당 벽화》 특별전을 개최했다. 사진으로 봐도 작품의 거대한 스케일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몇 년 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이 작품을 처음 볼 수 있었다. 그전까지 세로로 긴 두루마리에 그려진 산수화나 사군자를 주로 접하다가 이렇게 스케일이 크면서도 치밀한 묘사의 작품을 마주하니 가슴 벅찬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대작 채색화를 많이 남기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도 생겼다. 그 정도로 이 작품은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총석정 절경도>의 세부
<금강산 만물초 승경도>의 세부

이 외에 대조전과 경훈각에 벽화를 그린 김은호, 오일영, 이용우, 이상범, 노수현은 우리나라 근대회화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안중식, 조석진 등 조선의 마지막 화가들에게 그림을 배운 이들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1970년대 초반까지 동양화단의 중추로 활동했다. 재밌는 사실은 이들이 그 이후에는 사례를 찾기 어려운 전통 궁중 채색화로 벽화를 그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1920년대에는 각자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 화업을 완성하였다. 마치 이 벽화로 전통의 종지부를 찍으려고 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마지막 조선왕실의 회화라는 사실 때문일까. 더할 나위없이 크고 화려함을 뽐내고 있음에도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면서도 찬란한 느낌을 준다.

김은호, <백학도>, 1920, 비단에 채색, 214.0×578.0, 창덕궁 대조전 서쪽 벽, 국립고궁박물관
오일영, 이용우, <봉황도>, 1920, 비단에 채색, 214.0×578.0, 창덕궁 대조전 동쪽 벽, 국립고궁박물관
이상범, <삼선관파도>, 1920, 비단에 채색, 194.9×524.5, 창덕궁 경훈각 서쪽 벽, 국립고궁박물관
노수현, <조일선관도>, 1920, 비단에 채색, 194.9×524.5, 창덕궁 경훈각 동쪽 벽, 국립고궁박물관
전시 홍보 영상으로 창덕궁 희정당 내부와 벽화가 실제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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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훈

아트앤팁미디어랩 디렉터. 대학원에서 미술사(동아시아회화교류사)를 전공하고, 박물관 학예연구사, 문화예술 관련 공공기관 프로젝트 매니저로 미술계 현장에서 10년간 일했습니다. 현재는 미술작품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며, 미술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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