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존재감’

“AI가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나의 직업은 괜찮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AI에 잠식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화두에 오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직은 멀었겠거니’라며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발전하는 주기가 급격히 짧아지면서 어느새 턱 밑까지 차오른 듯한 느낌이 든다.
SNS를 보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AI 시대를 전망하는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글들의 공통점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대체된다.
- 반복적인 패턴을 찾는 업무는 대체된다.
- 매뉴얼 기반의 고객 응대와 상담 업무는 대체된다.
- 비용 정산처럼 규칙이 명확한 업무는 대체된다.
- 계약서 등 법률 검토 업무는 대체된다.
- 통번역 업무는 대체된다.
- 물류 배차 및 관리 업무는 대체된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으며 이미 대체된 사례들도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인회계사는 시험 합격 후에 2년 동안 실무 수습을 해야 정식 회계사 자격이 주어지는데 작년부터 신입 채용률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회계법인이 신입을 채용해서 맡길 만한 일들을 이제는 더 저렴한 비용의 AI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여기에 더하여 그동안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고유의 영역마저 대체될 것이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창의성과 예술성은 그동안 ‘영혼’이 담겨야 한다는 믿음 하에 AI시대에도 안전할 거란 안심이 있었지만 이제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수십 년의 숙련도가 필요한 의료와 법률 분야에서도 인간 전문가의 정확도를 넘어섰다는 연구가 발표되고 있다.
심지어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정서적인 공감을 기반으로 한 상담 역시 AI에 의존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물론 정신의학과 심리상담에서 행하는 상담은 연구를 바탕으로 정해진 프로토콜과 기법을 따르기에 AI화할 수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라포(Rapport) 형성과 인간적인 공감, 그리고 각 개인의 고유한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완전히 AI화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챗GPT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내용이 상담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
AI가 대체하고 있는 분야를 종합하면 고속 연산을 바탕으로 한 ‘기계적‘인 능력이 잘 발휘되는 분야로 정의할 수 있다. ‘인간적’인 분야도 점차 능력을 발휘하는 중이지만 이걸 두고 정말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의문과 함께 아직은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적‘인 능력,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여러 정의가 있지만 ‘존재감’으로 설명 가능하다.

사람마다 다른 지문을 갖고 있듯이 같은 내용을 실행해도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만의 고유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N.EX.T의 원곡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고유한 느낌이 있고, 하현우가 부른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또 다른 맛이 느껴지는 것과 같다. 같은 풍경을 그리더라도 정선이 그린 산수화와 강세황이 그린 산수화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서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각자의 화풍도 다르다. 우리는 이걸 개성이라고 부른다.
개성은 여러 방식으로 가질 수 있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나만의 관점으로 보는 것, 같은 것을 즐기더라도 나만의 취향으로 즐기는 것, 이를 바탕으로 큐레이션하여 추천할 수 있는 능력이 대표적이다.
AI가 미술사를 공부할 때 도움이 되는 책을 추천하는 것과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이 그동안의 공부 경험과 큐레이터로 일하며 깨달은 점을 바탕으로 추천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미술작품의 추천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작품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삶의 경험과 생각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느낌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사안을 해석하는 경로와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다양하다. 학문 연구에서는 이를 방법론이라고 한다. 미술사 역시 미술을 바라볼 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 많다. 하나의 작품을 두고 A라는 프레임으로 볼 수 있고, B라는 프레임으로 볼 수도 있다. 정답은 없지만 가장 합리적이라 여겨지는 방법론은 존재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 관점의 다양함을 익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라는 게 도출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정 영화를 두고 ‘이동진 평론가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김혜리 기자는 어떻게 봤을까?’, 아니면 ‘영화 유튜버 거의없다는 뭐라고 했을까?’를 기대하듯 사람마다 다른 관점과 해석을 기대하는 일은 그들이 서로 다른 관점과 개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는 그들이 존재감이 있다는 말로 귀결된다.
또한, 미술사는 모호하고 본능에 가까운 느낌을 근거가 있는 취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단순한 ‘좋음’을 넘어 왜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찾아가는 훈련은 취향의 정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같은 수묵산수화여도 어떤 때는 강렬한 붓질이 눈에 띄는 절파화풍의 그림이 좋을 때가 있고, 때로는 언뜻 엉성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담박한 문인화풍을 좋아할 수도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왜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취향의 근거를 갖는다는 것은 나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과 동일하다. AI가 아닌 ‘나’를 말이다.
이렇게 정립된 관점과 취향은 타인과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존재감, 고유한 브랜드가 되는데 도움이 된다. 기술이 상향 평준화된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미묘한 '한 끗'의 차이를 만들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