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이제 무료입니다.
구글 검색, AI 대화창에 질문 하나만 던져도 미술사 연도, 미술사조의 개념, 작품의 특징은 바로 알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앞으로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의 역할은 점점 위축될 겁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은 더 많은 사실과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들 사이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가려내는 기준입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수장고에는 관람객이 한번도 본 적 없는 수천, 수만 점의 작품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억에 남는 것은 언제나 전시실 조명 아래 놓인 몇 점뿐이죠.
기억에 남은 작품과 남지 않은 작품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큐레이팅’이라 부르는 선택과 해석입니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단순한 보물 창고로 남지 않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큐레이터는 작품을 ‘많이’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이 작품이 지금 왜 필요하고, 무엇을 보아야 하며, 어떤 질문을 가져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연구자들은 앞으로 ‘지식을 설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큐레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단순히 공부를 많이 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시대는 점점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설명하고 싶은 대상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는지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학위를 보고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관점을 보고 선택합니다.

미술을 나의 콘텐츠로 삼아 일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내가 공부하면서 알게 된 이 소중한 지식을 전달하고 싶다'는 열정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열정이 때로는 강의의 실패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본인은 미술이 너무 좋아서 미술사, 미학, 역사 등 재밌게 공부했기 때문에 뭐든 다 재밌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이 강의를 통해 얻어가고 싶은 마음을 외면한 채, 내가 재미있게 배운 지식을 그대로 쏟아내는 방식일 뿐입니다.
강의를 기획해서 만드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은 '콘텐츠' 그 자체에 매몰되는 것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사를 완벽히 정리해 드립니다", "인상주의 미술을 알려드립니다"와 같은 주제는 공급자의 입장에서만 매력적입니다. 냉정하게 말해, 이와 같은 단순한 정보는 이미 유튜브 등 쉽게 접할 곳이 많습니다.
수강생이 소중한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단순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닿아있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을 아껴줄 수 있는지도 중요한 선택 기준입니다.
글이나그림 아카데미의 경우는 “미술사 교양서도 많이 읽고, 전시도 많이 다니고 있지만 정리가 잘 안된다. 이왕 공부하는 거 미술사를 전공 공부하듯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지적 갈증을 가진 분들이 주로 찾아주십니다. 여기에서 해결하고픈 고민은 “한 번에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죠.
우선 내가 하고 싶은 강의 주제 후보를 정한 후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이왕이면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좋습니다.
"이 강의가 당신의 어떤 갈증이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전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지만, 후자는 일을 하면서 디테일까지 잘 챙길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해답을 제시해줍니다. 주제는 동일하게 미술을 다루지만, 수강생의 현실적인 고민에 다가갈 수 있는지, 아닌지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의 주제로 강의를 홍보하면 창의성이 중요한 일(기획, 디자인 등의 분야)을 하는 사람들이 한 번 더 관심갖고 살펴보게 될 겁니다.
이렇게 조금 더 삶에 밀착되고 고민까지 해결해줄 수 있는 주제를 미니 강의로 만들다보면 더 큰 강의 기획까지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을 가르칠까"가 아니라 "무엇을 해결할까"를 고민하는 습관을 가져보세요. 그럼 점점 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강의를 만들 수 있습니다.

미술사 수업을 하면서 수강생들에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작품을 뜯어봐야 합니다."
"작품을 최대한 건조하게 보세요."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면 안됩니다."
작품은 작가의 산물이다. 하지만 작품을 해석할 때는 따로 떼어놓고 보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미술사에 기록될 정도로 명품이라 평가받는 작품들은 대부분 작가가 예술혼을 실어 만든 위대한 산물로 귀결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빈센트 반 고흐처럼 작가의 삶이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유명하면 작품은 작가의 뒤로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 지점에서 한 번쯤 염두에 두면 좋을 건 ‘작가는 과연 이런 반응을 좋아할까’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물론 좋을 것이다. 나를 알아봐주고 나의 고통을 이해해주니 말이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지속되면 작가는 불쾌할 수도 있다. 애써 만든 내 작품은 뒷전이고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이러나'라며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작품을 봐야 한다. 그리고 작품에 표현된 조형언어를 최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태도가 오히려 작가에 대한 존중이 될 수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예를 들어 집에 손님이 놀러온다기에 내가 유튜브에서 레시피를 찾아가며 어렵게 쿠키를 구워서 내놨는데 쿠키에 대한 이야기는 뒷전이고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힘들지는 않았는지 시시콜콜 묻기만 한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내가 이러려고 쿠키를 구웠나'라는 허탈함이 생길 것이다.
미술사에는 삶과 예술이 일치하는 인물들이 있지만 인간적으로 존중하기 어려운 삶의 궤적을 지닌 작가도 많다. 예를 들어 사생활이 문란했거나, 뿌리 깊은 성차별적 사고를 지녔거나, 독재 권력에 협력했던 경우 등 매우 많다. 그럼에도 그들의 작품이 명품으로 평가되어 미술사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작가의 삶과 작품성은 별개라는 이야기가 성립 가능하게 된다. 작품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은 이 지점에 이르러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
작년(2025년)의 마지막 날, 수전 손택의 『해석에 반하여』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1966년 처음 발표된 이 평론집은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 처음 소개되었고, 이번에 재출간되었다.
무엇보다 먼저 예술 형식에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내용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해석의 오만을 부추긴다면, 형식을 더 세세하고 철저하게 묘사함으로써 해석을 침묵시킬 수 있다. 그러려면 어휘가 필요하다. 형식을 규정하는 어휘가 아니라 묘사하는 어휘다. 최상의 비평은 내용에 대한 생각을 형식에 대한 생각에 녹여내는 드문 유형의 비평이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술 작품에서 내용을 최대한 찾아내는 게 아니며, 실제로 있는 것 이상의 내용을 작품에서 짜내는 것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내용에 대한 관심을 줄여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예술 비평의 목적은 예술 작품을(또한 그러면서 우리의 경험을) 더욱 생생한 것으로(그 반대가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비평의 기능은 그것이 어떻게 그런지를 또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이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를 보이는 것이 아니다.(pp. 33-36)
수전 손택은 예술 작품을 고정된 의미나 관념으로 환원하려는 전통적인 해석 방식을 비판했다. 작품의 숨겨진 의미를 캐내는 해석이 오히려 본질을 훼손하기 때문에 작품 그 자체의 감각과 형식에 집중할 것을 제안한 것이다.
특히 작품에 있지도 않은 내용을 만드는 일은 경계해야 하며, 예술 비평의 본질은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내용이 모든 예술 작품에 통용되는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종교미술의 경우에는 교리를 기반으로 한 상징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려진 것 이면의 상징을 추출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종교미술 역시 이보다 더 큰 범주인 조형미술, 예술이라는 점에 주목한다면, 상징의 해석 이전에 ‘건조하게’,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건 매한가지다.
그래서 수전 손택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에게는 해석학이 아닌 예술의 성애학이 필요하다.(p. 36)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의미를 찾는 게 아니라 '성애학', 즉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일이다. 이는 작품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첫번째 단계이며 작품과 작가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라 할 수 있다.

“AI가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데 나의 직업은 괜찮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AI에 잠식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이 사회 전 분야에 걸쳐서 화두에 오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직은 멀었겠거니’라며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발전하는 주기가 급격히 짧아지면서 어느새 턱 밑까지 차오른 듯한 느낌이 든다.
SNS를 보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AI 시대를 전망하는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글들의 공통점을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이외에도 수없이 많으며 이미 대체된 사례들도 심심치 않게 접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인회계사는 시험 합격 후에 2년 동안 실무 수습을 해야 정식 회계사 자격이 주어지는데 작년부터 신입 채용률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회계법인이 신입을 채용해서 맡길 만한 일들을 이제는 더 저렴한 비용의 AI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여기에 더하여 그동안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고유의 영역마저 대체될 것이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창의성과 예술성은 그동안 ‘영혼’이 담겨야 한다는 믿음 하에 AI시대에도 안전할 거란 안심이 있었지만 이제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수십 년의 숙련도가 필요한 의료와 법률 분야에서도 인간 전문가의 정확도를 넘어섰다는 연구가 발표되고 있다.
심지어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정서적인 공감을 기반으로 한 상담 역시 AI에 의존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물론 정신의학과 심리상담에서 행하는 상담은 연구를 바탕으로 정해진 프로토콜과 기법을 따르기에 AI화할 수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라포(Rapport) 형성과 인간적인 공감, 그리고 각 개인의 고유한 상황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완전히 AI화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챗GPT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내용이 상담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갖춰야 하는가.
AI가 대체하고 있는 분야를 종합하면 고속 연산을 바탕으로 한 ‘기계적‘인 능력이 잘 발휘되는 분야로 정의할 수 있다. ‘인간적’인 분야도 점차 능력을 발휘하는 중이지만 이걸 두고 정말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의문과 함께 아직은 요원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적‘인 능력,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여러 정의가 있지만 ‘존재감’으로 설명 가능하다.

사람마다 다른 지문을 갖고 있듯이 같은 내용을 실행해도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각자만의 고유한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N.EX.T의 원곡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고유한 느낌이 있고, 하현우가 부른 <해에게서 소년에게>의 또 다른 맛이 느껴지는 것과 같다. 같은 풍경을 그리더라도 정선이 그린 산수화와 강세황이 그린 산수화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서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각자의 화풍도 다르다. 우리는 이걸 개성이라고 부른다.
개성은 여러 방식으로 가질 수 있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나만의 관점으로 보는 것, 같은 것을 즐기더라도 나만의 취향으로 즐기는 것, 이를 바탕으로 큐레이션하여 추천할 수 있는 능력이 대표적이다.
AI가 미술사를 공부할 때 도움이 되는 책을 추천하는 것과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이 그동안의 공부 경험과 큐레이터로 일하며 깨달은 점을 바탕으로 추천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미술작품의 추천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작품을 대상으로 하더라도 삶의 경험과 생각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작품에 대한 느낌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사안을 해석하는 경로와 결론에 도달하는 과정은 다양하다. 학문 연구에서는 이를 방법론이라고 한다. 미술사 역시 미술을 바라볼 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이 많다. 하나의 작품을 두고 A라는 프레임으로 볼 수 있고, B라는 프레임으로 볼 수도 있다. 정답은 없지만 가장 합리적이라 여겨지는 방법론은 존재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 관점의 다양함을 익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라는 게 도출된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정 영화를 두고 ‘이동진 평론가는 어떻게 해석했을까?’, ‘김혜리 기자는 어떻게 봤을까?’, 아니면 ‘영화 유튜버 거의없다는 뭐라고 했을까?’를 기대하듯 사람마다 다른 관점과 해석을 기대하는 일은 그들이 서로 다른 관점과 개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는 그들이 존재감이 있다는 말로 귀결된다.
또한, 미술사는 모호하고 본능에 가까운 느낌을 근거가 있는 취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단순한 ‘좋음’을 넘어 왜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근거를 찾아가는 훈련은 취향의 정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같은 수묵산수화여도 어떤 때는 강렬한 붓질이 눈에 띄는 절파화풍의 그림이 좋을 때가 있고, 때로는 언뜻 엉성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담박한 문인화풍을 좋아할 수도 있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왜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취향의 근거를 갖는다는 것은 나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과 동일하다. AI가 아닌 ‘나’를 말이다.
이렇게 정립된 관점과 취향은 타인과 대체 불가능한 나만의 존재감, 고유한 브랜드가 되는데 도움이 된다. 기술이 상향 평준화된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미묘한 '한 끗'의 차이를 만들어줄 것이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한 분야에 몸 담으며 쌓아온 관점, 철학이 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관점과 철학은 자신의 전공을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고민하고, 혼나기도 하고, 좌절감을 겪는 일련의 과정과 이를 아웃풋(글쓰기, 직장 등)하는 경험을 통해 나도 모르게 쌓이는 것들입니다.
따라서 막막하겠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소위 지식을 '묵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죠. 단순히 지식 암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미술사로 예를 들면, 책과 논문을 통해 누구나 작가명, 작품명, 작품 설명과 같은 지식을 암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해석과 평가는 암기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유사한 사례에 대한 경험, 다른 학자들의 기존 평가, 나의 관점과 기준이 조화를 이룬 상태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몇 년에 태어났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작품이 언제 제작되었고 등을 암기하는 건 시험을 보는 게 아니라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 찾으면 됩니다. 암기에 시간을 투입하는 것보다 맥락을 음미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암기만 해서 아웃풋해봐야 생기없는 글과 강의가 될 뿐입니다. 그리고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오래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머리에 남습니다.
이 분야에서 통용되는 관점으로 적절한 자료를 찾은 후에 "나는 어떻게 해석하고, 그래서 어떻게 평가한다"까지 이끌어내도록 '묵히는' 시간을 견디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