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만나는 정선의 ‘박연폭도’

정선의 <박연폭도>를 마지막으로 본 건 2009년 시즈오카현립미술관에서 개최한 전시였다.

《조선왕조의 회화와 일본-소타쓰, 다이가, 자쿠추도 배운 이웃 나라의 미》라는 긴 이름의 특별전으로 지금까지 봤던 수많은 전시들 중에서 규모와 출품작의 퀄리티 등 모든 면에서 최고였던 전시로 기억에 남아있다.

이 전시는 단순히 조선시대 미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 회화가 일본 회화에 미친 구체적인 영향에 대해 연구한 성과를 작품으로 입증한 자리였다. 연구와 전시가 선순환하는 모범 사례로 높이 평가받았다.

일본 미술사학자들이 기획하고, 우리나라의 여러 미술사학자와 기관이 협력해 성사된 전시였는데 ‘블록버스터’라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작품들이 대거 대여되어 일본 작품들과 함께 소개되었기 때문에 한일 미술 교류사의 실체를 공부하기에 매우 좋은 전시였다.

그만큼 회화사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이 전시를 안 본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일본에 가서 관람하고 왔다. 석사과정생이었던 나는 미술교류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이때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2008년에 시즈오카현립미술관, 도치기현립미술관, 센다이시립미술관에서 순회 전시를 한 《조선왕조의 회화와 일본-소타쓰, 다이가, 자쿠추도 배운 이웃 나라의 미》 특별전 도록

동아시아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다. 문헌에도 언급되고 실제 많은 서화가들이 이를 목표로 삼아 작품 제작에 임했다.

당시의 나는 ‘기운생동’이 무슨 의미인지 머리로는 이해하겠는데 작품에서 어떻게 이를 발견할 수 있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어 답답한 상태였다. 추상적으로 ‘그냥 좋은 말 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어린 생각도 했다.

사실 지금도 작품 속에서 그것을 단번에 알아보는 안목은 부족하다. 다만 ‘기운생동’이라는 것이 말뿐인 수사가 아니라, 분명 실체로 존재한다는 믿음은 갖고 있다.

이 믿음은 이 전시에서 처음 본, 그리고 그 후로는 다시 볼 수 없었던 정선의 <박연폭도>를 마주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이 전시에는 한국과 일본의 대표 작품 326점이 출품되어, 어느 하나 빼놓기 어려울 만큼 모두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박연폭도>는 같은 벽에 걸린 다른 작품들을 가릴 정도로 압도적인 기세를 발하고 있었다. 작품의 특징을 잘 포착하고 싶으면 비교부터 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을 새삼 체감할 수 있었다.

진한 먹으로 빠르게 상하좌우를 거침없이 칠하면서도 붓을 멈춰야 할 곳을 정확하게 아는 필치는 기운생동이 무엇인지 몸으로 증명하는 듯했다. 그리고 폭포의 기세를 강조하기 위해 폭포를 직접 건드는 게 아니라 양쪽에 위치한 절벽을 더욱 진하게 칠한 점에서는 동아시아 미술 특유의 역설적인 센스를 느낄 수 있었다.

이후 <박연폭도>를 볼 수 없었다. 개인 소장품인만큼 공개되는 기회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서화실을 재개관하며 이 작품을 대여해 전시했다는데 17년 전 시즈오카에서 봤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며 그동안 내 생각과 느낌이 어떻게 변했는지 비교해보고 싶다.

이번 전시에는 이 작품 외에도 정선의 필력을 단번에 느낄 수 있는 <우뚝 선 바위>, 일반적인 산수화와 매우 다른 구도로 그려 독창성을 인정받는 <단발령망금강산도>와 <비로봉도> 등도 볼 수 있다. 정선의 이 작품들 덕분에 우리나라 산수화의 개성이 더욱 두드러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설렘을 안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갈 일이 생겼다.

p.s.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가서 그림을 그려 주느라 팔이 아파 울려고까지 했던 김명국의 최고 명품 <달마도>도 서화실에서 볼 수 있다.

작가들의 책상

마음이 편안한 날에는 느긋하게 누워서 핀터레스트로 모아둔 노트, 책상 인테리어 사진들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사람은 노트에 이렇게 필기하는구나, 이 방식 괜찮은데?, 나도 저 노트 살까 등을 생각하는 시간이 평화롭게 느껴져서 좋다.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유명 작가들의 책상 사진으로 만든 영상을 봤다. 내 책상을 다시 배치하고 싶은 욕심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그동안 모아둔 노트 사진들(https://kr.pinterest.com/artntip/moleskine-note-pen/)

기록의 이면

우리는 기록을 믿는다. 작가가 남긴 일기, 편지, 인터뷰는 작품을 해석하는 가장 강력한 열쇠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곤 한다. 기록하는 손 뒤에 숨은 의도다.

나는 공개적인 SNS는 물론, 나만 보는 내 노트에도 생각을 정제해서 쓴다. '정제한다'는 말은 내용을 다듬어 쓰는 행위이지만 나의 취약함, 부끄러운 실수, 타인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비겁함을 뺀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나조차 나를 직면하기 두려워 편집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직시하여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요즘 '브레인 덤프', '모닝 페이지'와 같은 적나라한 쏟아내기가 유행하는 듯하다. 현재의 내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다음을 대비할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되는 글쓰기 방식이다.

수백 년 전, 혹은 수십 년 전의 작가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의식해야 한다. 그들이 남긴 유려한 문장과 숭고한 예술론 속에는 차마 글에 옮기지 못한 개인적인 욕망과 결핍, 감추고 싶었던 시대적 한계가 촘촘히 박혀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기록은 객관적인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작가가 세상에게 기억되고 싶어 했던 편집된 자아의 투영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작가의 말과 글을 액면 그대로 인용하고, 그것을 작품의 절대적인 정답으로 받들어 해석을 끝낸다면 모든 인문학의 존재 이유는 사라진다. 행간을 읽어야 하고, 취지를 유추해야 하며, 이 기록을 쓸 당시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문학은 문학작품을, 철학은 개념을, 사학은 사료를 프레임삼아 이면을 해석한다. 미술사는 미술작품을 프레임삼아 기록에 담기지 않은 이면을 들여다보는 학문이다.

작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되, 그 목소리에 감춰진 시각적 증거, 즉 조형언어에 주목해야 한다. 텍스트로 말하지 않더라도 캔버스 위의 안료는 작가가 걸어온 길과 무의식을 담아 흔적을 반드시 남기기 때문이다.

정답은 없다. 다만 정답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과 합리적인 과정이 수반되면 좋은 해석이라 평가받는다. 작가의 기록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고 그 이면의 진실을 재구성하는 상상이 합당하다 여겨질 때 작품의 가치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이렇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시선의 성장은 미술을 좋아하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보너스와 같은 축복이 되어줄 것이다.

미술을 업으로 삼고 싶다면 : 주제를 좁히는 롱테일 전략

작년 미술사 전공자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아트투어로 다녀왔던 교토국립박물관의 《송원 불화전》

미술을 좋아해서 이를 업(業)으로 삼고 싶어 하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대개는 "미술을 함께 즐기는 삶을 살고 싶다"거나 "대중에게 미술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다"는 포부로 시작하곤 합니다. 하지만 모든 분야가 그러하듯 미술 역시 긴 역사만큼이나 방대하고 깊습니다. 이 거대한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주제를 최대한 좁게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마케팅 용어 중에 ‘롱테일 법칙(long tail theory)’이라는 게 있습니다. 20%의 주류 상품보다 80%에 해당하는 비주류 상품의 매출이 더 크다는 의미입니다. 미국 아마존 서점은 매출의 절반이 비인기 서적에서 나오는데 이 역시 롱테일 법칙의 사례에 해당합니다.

‘롱테일’의 관점에서 보면, 미술 콘텐츠도 거대한 주제를 넓게 다루기보다 작고 뾰족한 분야부터 먼저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인 출발점이 됩니다.

첫째, 틈새시장을 선점해야 나만의 포지셔닝이 가능해집니다. 콘텐츠 시장에서 '미술 일반'은 이미 레드오션입니다. "서양미술사를 알려드립니다"라는 메시지처럼 방대한 주제는 누구에게도 특별하게 다가가지 못합니다. 이 어려움을 뚫고 사람들 마음에 전달될 정도의 확실한 소구점(미술사 전공자, 큐레이터와 같은 공신력있는 등)이 없으면 ‘좋은 거 하나보다’하고 스쳐지나갈 뿐이죠.

하지만 ‘18세기 진경산수화’ 혹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처럼 주제를 좁히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주제가 좁아질수록 그 정보를 간절히 원했던 타겟층은 더욱 선명해지며, 여러분은 해당 분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일단 이렇게 시작해야 자리를 잡기 용이하고 점차 분야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수요가 없을 것 같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남도 좋아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해보세요. 분명 나와 같은 사람들은 존재합니다.

둘째, 지식을 쌓는 과정에서 '깊이'가 '넓이'를 견인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시작할 때 모든 시대와 사조를 훑으려는 방식은 효율이 떨어집니다. 굳게 마음을 먹고 미술사 개론서를 펼쳤지만 몇 개월째 그리스 미술만 읽고 있는, 삼국시대 미술만 공부했던 경험과 비슷합니다.

차라리 특정 주제나 작가 한 명을 정해서 깊게 파고들다 보면 그와 연결된 시대적 배경, 당시의 사상, 다른 작가들과의 관계망이 자연스럽게 딸려 옵니다. 이렇게 좁게 시작해서 깊이를 확보한 뒤에 이를 바탕으로 살을 붙여 나가는 방식이 전문가로서의 지적 외연을 넓히는 데 훨씬 효율적입니다. 전공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자신이 쓴 논문 분야 외에는 잘 모르는 게 현실이거든요.

주제를 좁힌다고 해서 나의 가능성까지 제한하는 것은 아닙니다. 넓은 캔버스 위에 나만의 선명한 점 하나를 찍는 시작입니다. 그 점이 명료할 때 미술이라는 방대한 세계를 중심을 잡고 이야기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겁니다.

효율성의 함정

모두가 '더 빠르게'와 '더 편하게'를 외치고 있다.

AI와 각종 템플릿(노션 등)이 우리의 빈틈을 매끄럽게 메워주는 시대다. 하지만 나에게 쉬운 일은, 남들에게도 쉽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모든 것이 '마찰' 없이 흘러가는 세상이라면 사람들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건 역설적으로 마찰 그 자체일 것이다.

디자인툴로 그린 완벽한 직선은 보기엔 깔끔하고 완성도가 높아 보이지만 아무런 감흥을 주지는 못한다. 서툰 인간의 손이 그려낸, 조금은 비뚤비뚤한 선에 마음을 뺏길 때가 많다. 미술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편리함을 추구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어야 한다. 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편리함을 외칠 때 나만의 독특한 취향과 고집, 그리고 개성을 드러내는 게 나의 쓸모를 증명하고, 더 나아가 존재감이 된다.

효율적이지 않은 인간미가 나를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 인간미를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방식은 글쓰기다. 글을 쓰면서 정립되는 나의 생각과 관점은 보너스다.

우선 지금 남들과 똑같은 속도로 달리고만 있는지, 아니면 나만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잠시 멈춰 서있는지 직시하는 게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