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도 백자는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청자는 있었다.
호림박물관에서 일할 때 고려백자를 전시하며 묘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분명 흰색 백자인 건 맞는데 톤이 조선백자와 달랐달까요? 조선백자는 쨍하고 투명한 흰색이 많은 데 반해 고려백자는 글씨를 지울 때 쓰는 하얀 수정액 느낌이었죠. 조선백자 안에서도 흰색이 여러 갈래인데 고려백자는 또 다른 결이었습니다. 이때 색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다는 점에 대해 새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호림박물관에서는 《미묘지색(微妙之色)_고려백자와 조선청자》 특별전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익숙한 시선에 새로움을 더할 수 있는 전시입니다. 이렇게 대세가 아니었던 것을 조명하는 전시는 익숙해져서 그냥 지나칠 법한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왜 이렇게 보이는가, 왜 이렇게 느끼는가’를 되새겨보며 나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습니다.
전시는 다음 주 금요일(7/31)까지 합니다.
1. 고려백자, 왜 조선백자와 하얀 색감이 다를까?

고려시대에도 백자는 있었습니다.
다만 조선시대의 백자와 흙 · 온도 등 제작 방식이 달랐습니다. 고려시대 백자는 하얀 흙에 청자와 유사한 유약을 사용했습니다. 다만 색을 낼 만큼의 철분은 없었죠.
유약이 거의 투명하니 아래의 흰 흙이 그대로 비쳐 흰 그릇이 됩니다. 여기에 가마 온도가 충분히 오르지 않아 유약이 다 녹지 못해 완전한 유리질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빛이 통과하는 대신 표면에서 흩어져 우윳빛이 됩니다.
조선 백자가 맑고 투명한 흰색이 많다면, 고려 백자는 하얀 색 페인트를 칠한 것처럼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하는 이유입니다. 전시에서 백자를 보실 때 어떤 흰색인지를 한번 보세요.
✔️ 조선백자 = 백토 + 장석질 유약(철분 거의 없음) → 맑고 단단한 흰색
2. 조선청자, 왜 고려청자와 푸른 색감이 다를까?

1460년대에 경기도 광주에 왕실 전용 가마가 세워지고, 조선은 백자의 나라가 됩니다.
이 가마에서는 17세기 후반까지 청자도 조금씩 제작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청자는 백자와 같은 흙으로 빚고 청자 유약을 입힌 그릇입니다. 그래서 '백태청자'라고도 부릅니다.
청자 유약은 거의 투명해서 아래의 흙 색이 그대로 비쳐 나오는데, 고려청자의 흙은 회색이라 유약과 만나 푸른 빛이 짙고 깊어집니다. 반면 조선청자는 하얀 흙이다 보니 고려청자보다 더 옅고 맑은 청색이 나옵니다. 형태는 조선시대 백자와 닮아있고 색만 달랐습니다. 형태는 조선시대 백자와 유사하고 색만 달랐습니다
고려청자의 깊은 비색(에메랄드색)은 철분 성분이 많은 회색 흙이 청자 유약 아래에서 색을 받쳐주어 생긴 깊이였거든요. 그런데 조선시대 청자는 그 '받침'이 흰 흙으로 바뀌니 빛이 통과하며 색이 더욱 맑고 산뜻해진 느낌이 드는 겁니다.
그러면 백자의 시대에 왜 굳이 청자를 만들었을까요? 왕실에서 신분에 따라 쓰는 그릇을 나눴기 때문입니다. 세자는 동궁에 거처한다하여 '동궁마마'라고도 부르죠. 오방색에서 파란색은 동궁이 위치한 동쪽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왕은 백자를 쓰고, 세자가 머무는 동궁은 청자를 썼습니다. 이러한 상징성을 위해 왕실 가마에서 청자를 제작했던 겁니다.
✔️ 조선청자 = 백토 + 청자 유약(철분 있음) → 옅고 맑은 청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