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국립박물관의 야경

대학생이 되면 교보문고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보고 싶었다.

막상 아르바이트를 할 때가 되자 이 생각을 접었다. 왠지 일로 접하면 품고 있던 애정이 깎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결정은 지금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요한 박물관의 야경을 무척 좋아한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잠시 자유로워진 유물의 숨결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 좋고, 특유의 고요함이 번잡한 도심에서 더욱 빛이 나서 좋다.

어쩌면 계속 즐기기만 하기 위해 박물관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 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남의 집 강아지나 애기처럼 책임없는 쾌락만 즐기기 위해서랄까.

역시 잘 선택한 듯하다.

아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에두아르 마네, <아스파라거스 다발>, 1880, 캔버스에 유채, 46×55, 발라프-리하르츠미술관, 쾰른

하루를 보내면서 접하게 되는 광고의 수가 2020년대 들어 10,000건을 넘어섰다고 한다. 이중 실제 기억에 남는 것은 거의 없다. 그만큼 눈에는 보이지만 보지 않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다. 출근길에 늘 지나치는 가로수의 잎이 어제와 오늘 다른 빛을 보이고 있다는 것도, 창가에 놓아 둔 화분의 그림자가 시간에 따라 조용히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할 때가 많다.

아는 것과 보는 것은 다르다. 어쩌면 알고 있다는 믿음 하에 보는 것을 대신한 채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880년,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는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그렸다. 현재 독일 쾰른의 발라프-리하르츠미술관에 걸려 있는 이 작품에서 마네는 채소를 미화하지 않았다. 줄기 끝의 보랏빛이 저마다 다른 농도를 지니고 있는 모습, 묶인 끈이 누르는 자리에 미세한 그림자가 생긴 모습, 그리고 아래에 깔려 있는 잎사귀의 축 늘어진 질감이 위의 단단한 줄기와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는 모습까지. 마네는 이것들을 그저 눈에 보이는 그대로 ‘기록’했다.

알랭 드 보통은 이 그림을 두고 이렇게 썼다.

“그는 미술을 이용해 아스파라거스에 없는 성질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이미 존재했지만 사람들이 무시하던 매력을 드러냈다. 우리가 그저 보잘 것 없는 줄기를 볼 때, 마네는 각 줄기의 미묘한 개체성, 특유의 빛깔과 색조의 변화에 주목하고 그것을 기록했다.”

알랭 드 보통, 존 암스트롱, 『영혼의 미술관(Art as Therapy)』(문학동네, 2013)

마네는 아스파라거스에 없는 성질을 부여하면서까지 이상화시키지 않았다. 차분히 아스파라거스를 들여다보고 화폭에 정성스럽게 옮겼을 뿐이다. 즉, 이미 존재했지만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치던 매력을 드러냈을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작가의 역할에 대한 하나의 정의를 찾을 수 있다.

미술 작가는 이미 존재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것을 포착해 마침내 그것을 보이게 하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더 잘 보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더 오래 머무는 시선이 필요할 때가 있다.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다시 살펴봐야 할 때도 있다. 그제서야 이미 존재했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매력 혹은 유용함이 새삼 드러나기 시작한다.

작가가 대상 앞에 앉아 차분하게 살펴볼 때, 직장인이 익숙한 업무를 처음인 것처럼 다시 살필 때 이 시선은 그동안 놓쳤던 것을 새롭게 보게 해준다. 매일 작성하는 보고서와 매주 반복하는 회의의 흐름을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살펴보며 '왜 이 항목이 여기에 있는가', '이 순서가 정말 최선인가', '이 단어가 적확한가'를 되물어봐야 한다.

마네가 이 작품을 세심한 시선으로 포착하여 그리기 전까지는 아스파라거스 줄기 끝의 보랏빛을 아름답다고 여겼던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가 이 보랏빛 농도 차이를 발견한 것처럼 익숙한 업무 안에도 그동안 보지 못한 미세한 결이 숨어 있을 것이다.

책의 2쇄를 간행하게 되었습니다.

5년 전에 독립해서 혼자 일을 시작하며 강의, 콘텐츠, 전시기획, 컨설팅까지 큐레이터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해봤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일을 너무 많이 벌려 놓기만 했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가장 잘하면서 질리지 않을 일로 미니멀하게 좁히고 싶어졌습니다.

몇 개월에 걸쳐서 이런 고민, 저런 고민을 하고 계획과 구조를 다시 조정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고민 결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더라구요. 처음 독립할 때 품었던 마음으로 말이죠.

미술작품을 매개로 관점 성장에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이를 전달하는 일에 가장 행복하다는 걸 새삼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책 마무리 작업으로 한동안 휴재했던 뉴스레터(grinagrim.substack.com)도 지난 달에 재개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작년에 출간했던 책이 2쇄에 들어간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학술 입문서이고, 서양미술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동아시아 미술이라 폭발력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감사했습니다. 막상 2쇄 소식을 들으니,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의 인기도 그렇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동아시아 미술에 관심을 갖고 계신 듯합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 미술을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썼습니다. 우리나라 미술을 이해하려면 이웃한 중국과 일본 미술도 함께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동아시아 전체로 주제를 확장했습니다.

책을 읽고 전시를 보러 갔다는 이야기, 제 미술사 수업을 듣고 이 책으로 복습하며 동아시아 미술이 더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글을 쓴 보람과 함께 미력하나마 책임감을 느낍니다.

미술이 특별한 감상의 대상임을 넘어, 일하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원래 그런 법이란 없다.

소식, 「귀거래사(歸去來辭)」 부분, 국립고궁박물원, 타이베이

요즘 조카보는 재미에 빠져있다. 이제 5살이 된 조카는 내가 뭘 가르쳐주면 항상 “왜?”를 말한다. 원래 그런 거라고 말하고 싶지만 애써 납득 가능한 대답을 찾느라 바쁘다. 돌이켜 보면 나도 어릴 때 그랬다. “왜?”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어른들에게 혼날 때도 있었다. 지금은 “왜”라는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 원래 그렇다는 것을 이해하고 적당히 수긍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원래 그런 거야.”

누구나 살면서 이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개 그 말은 의문 없이 받아들여진다. 오래된 것은 검증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지켜져 온 것에는 어딘가 신뢰가 쌓여 있다. 그러나 정작 이유를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같다.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이런 경험이 쌓이다보면 더 이상 “왜 그러한가”라는 말을 할 수 없게 된다.

황정견, 「한산자방거사시(寒山子龐居士詩)」 부분, 국립고궁박물원, 타이베이

규칙을 따르는 것과 규칙에 갇히는 것은 다르다.

송나라의 문인이자 서예가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이 '원래부터'라는 말의 취약한 논리를 지적했다. 그와 가까운 사이인 소식(蘇軾, 1037-1101)은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지만 서예만큼은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다. 글씨가 고법(古法)에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고법이란 왕희지 이래 선대 명가들의 글씨에서 추출된 기준, 즉 '이렇게 써야 올바른 글씨'라는 불문율을 의미했다. 사대부들은 그것을 내세워 소식의 서예를 비난했다. 그 비난에는 서예의 역사를 알고 있다는 자부심도 은근히 실려 있었다.

이에 대해 황정견은 고법이 처음부터 하늘에서 온 것이냐며 비판했다. 원래 그래야 한다는 법은 누가 준 것이냐는 물음이었다. 당시 사법체계도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라 오래 전부터 권위있는 자들의 판단에 따라 서서히 정착된 것에 불과하며 글씨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처음부터 규범이란 것은 없고, 점차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원래 서예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말은 우스운 일이라는 의미다.

소식은 황정견의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고 한다. 자신을 향한 비난이 뿌리에서부터 흔들리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컸을 것이다.

규칙을 열렬히 수호하는 사람들이 정작 그 규칙의 기원에 무지한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규칙은 잘 다듬어 발전시켜 나가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숨을 수 있는 방패다. 반면 소식처럼 규칙을 존중하되 자신의 방식을 밀고 나가는 사람은 규칙에 어긋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 잘 하면 자신이 새로운 본보기가 될 수 있고, 못해도 규칙에 얽매여 이도저도 아닌 상태를 면하게 된다.

황정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식의 서예를 옹호하면서 동시에 자신만의 서체를 개척했고, 훗날 그 역시 또 다른 고법의 기원이 되었다.

작가가 '이것은 미술답지 않다'는 말 앞에서 위축될 때, 직장인이 '우리는 원래 이렇게 해왔다'는 관행 앞에서 멈칫하게 될 때, 떠올려야 할 질문은 하나다.

“그 법은 어디에서 왔는가.”

미술사 책을 많이 읽었는데도 작품이 안 보이는 이유

오르세미술관에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기 전에 미리 공부를 하고 가는 편이다.

특히 외국에서 하는 전시를 보러 갈 때는 시간과 돈을 들여서 가는 것인만큼 공부를 미리 하고 가는 게 당연히 전시 보는 효과를 높일 수 있어 그리 한다.

학생일 때는 전시 관련 논문을 찾아 읽고, 작가의 생애도 정리하고, 가능하면 도록을 미리 구해 공부하며 최대한 전시보는 성과를 끌어올리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작품 앞에 서면 공부한 것 이상의 감동이랄까, 특별히 마음에 와닿지 않을 때가 많았다. 분명히 이 작품에 대해 공부하고 왔는데도 지식이 작품과 끈끈하게 연결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미술사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공부와 상관없이 작품은 여전히 낯설고 뭔가 능동적으로 작품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암기한 게 맞는지 대조하는 것에 그칠 때가 많다.

미술사 지식을 쌓는 것과 작품을 읽는 것은 사실 다른 능력이다.

물론 미술사 지식을 쌓는 것이 작품을 읽기 위한 기본 조건이긴 하다. 하지만 작품을 주체적으로 읽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서로 연결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이들이 이 둘을 같은 것으로 여기며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나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쳤다.

그렇다면 지식은 늘어나는데 작품은 여전히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수 1. '정보'를 쌓으면 작품이 보인다고 믿는다

미술사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많은 정보를 얻게 된다. 작가의 출생 연도, 어떤 화파에 속했는지, 당시 시대 배경은 어땠는지 등. 이런 정보들은 분명히 유용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작품을 볼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정보들은 작품의 ‘외부’에 위치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언제 태어났는지를 안다고 해서 필치의 리드미컬함, 속도감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는다. 화파의 계보를 외운다고 해서 화면 구성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작품의 내부로 들어가는 일이다. 필선의 방향, 여백의 의도, 색의 온도, 형태의 관계 등을 인식하고 ‘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작품이 보이기 시작한다. 미술사의 연대기적 흐름을 아는 것과 지금 눈앞의 작품 앞에서 할 수 있는 언어가 생기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동아시아 회화의 경우에는 이 간극이 더욱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사혁(謝赫)이 제시한 육법(六法)의 첫 번째 항목인 기운생동(氣韻生動)은 시대를 관통하며 회화의 이상적인 지향점이 되었다. 그러나 ‘기운’, ‘생동감’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개념은 형이상학적이라 작품의 어떤 부분에서 이를 포착할 수 있는지는 말로 설명하기가 무척 어렵다.

미술사 전공서, 논문에서도 자주 언급되지만 이게 화면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설명해주는 건 거의 없다. 본인이 감각적으로 느껴야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느낄 수 있도록 작품을 많이 봐야 하고 나만의 이미지 DB를 쌓아야 한다.

개념을 아는 것과 그것을 그림 앞에서 감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훈련이다.

실수 2. '감동'을 목표로 삼는다

미술 감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주 거론되는 말이 있다. "좋은 작품 앞에서는 절로 감동이 밀려 온다"는 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술관에 가면서 은연중에 감동을 기대한다. 작품 앞에 섰을 때 가슴이 뭉클해지기를 혹은 전율 같은 것이 오기를 바라며.

그러나 감동은 준비 없이 오지 않는다.

감동은 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찾아온다. 우리가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며 환호하고, 낙담하며 슬퍼할 수 있는 건 축구 경기와 대회의 룰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 경기에서 최소 2:2로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갈 수 있다는 식의 룰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하는 것이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문학 작품을 읽어도 그 울림에 도달하기 어렵듯이 작품을 읽는 고유의 언어가 없으면 감동의 통로는 막혀 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을 보고 본능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과 감동은 다른 범주의 이야기다. 임마누엘 칸트는 미적 판단은 단순한 감각적 쾌와 다르다고 봤고,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미술의 가치란 감각적인 자극이 아니라 매체 고유의 형식에 있다고 주장했다. 본능적인 느낌, 자극은 감동과 다르다는 것을 우선 전제로 하는 게 좋다.

감성보다 감수성을 키우는 훈련을 해야 한다.

감성은 본능적인 느낌에 가까운 것이라면, 감수성은 내가 왜 이렇게 느끼는지를 추적할 줄 아는 능력이다.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특정한 방식으로 보는 법을 훈련하다 보면 이전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순간이 생길 것이다. 그 순간이 진짜 감동이다.

실수 3. '이론'과 '작품'을 따로 공부한다

이건 전공자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로, 미술사 책을 읽는 시간과 작품을 보는 시간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전공자라면 선생님들께서 작품을 많이 ‘실견’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을 것이다. 작품 실견의 강조는 공부와 별개로 작품을 많이 보며 나만의 이미지 DB를 눈과 머리 속에 쌓아둬야 한다는 의미다.

책상에서는 이론을 읽고, 미술관에서는 그냥 느낌으로 보면 서로 연결될 일이 없게 된다. 그러니 아무리 책과 논문을 많이 읽고 공부를 해도 감상이 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론은 작품을 읽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실제 내 손에 쥐고 자꾸 써봐야 손에 익는 법이다. 알베르티가 『회화론』에서 말한 구성(compositio)의 개념을 그냥 읽고 넘어가는 것과 그 개념을 들고 실제 르네상스 회화를 보며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구조가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찾아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이론 없이 작품만 보면, 반대로 작품은 안보고 이론만 공부하면 이런 경험을 쌓을 수 없다. 매번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고, 무언가를 느끼고 싶지만 실체를 잡지 못한 채 물 위의 기름처럼 두둥실 떠다니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 실견을 많이 해야한다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일단 ‘눈에 바른다’는 생각으로 많이 보는 게 중요하다.

지식이 아니라 '언어'가 필요하다

미술사 책은 당연히 많이 읽되,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나의 언어로 소화할 수 있도록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한다.

우선은 책을 통해 작품을 보는 방법, 즉 작품에 표현된 조형 언어와 이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개념들을 정리하는 게 좋다. 그리고 이 내용을 실제 작품 앞에서 대입해가며 짤막하더라도 좋으니 눈에 보이는 것들을 메모로 남기다보면 서서히 나만의 관점이 형성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서야 그동안 공부했던 미술사 지식도 암기한 내용에 그치지 않고 생생한 경험으로 자리 잡게 된다. 외우려 노력하지 않아도 그냥 머리에 남아있는 당연한 지식처럼 느껴질 것이다.

모든 공부가 경험이 중요하듯 미술사 공부 역시 ‘볼 수 있는 것을 읽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구체성을 얻어 깊이를 가질 수 있다.